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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더 늘린 담뱃값 인상, 씁쓸한 뒷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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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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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형
서울대 의대 정신과 교수

“담배 연기의 무게를 잴 수 있을까? 그건 마치 우리 영혼의 무게를 재는 것처럼 황당한 일이지만.” 1995년 개봉했던 ‘스모크’란 영화에서 브룩클린의 담배 가게 단골 손님 폴의 인상적인 대사이다. 2015년 대한민국에서 그 황당한 논란이 뜨겁다. 정부는 올해 담배세를 약 2000원 인상하면서, 금연구역을 확대하였고, 담뱃갑에 더욱 선명한 옷을 입히려는 노력이 한창일 즈음, 회심 차게 담배 연기의 무게를 공개한다. ‘후두암 1㎎’, ‘뇌졸중 두 갑’, ‘폐암 하나’로.

 이 무게가 어떤 의학적 근거로 산정이 되었고, 국민건강 증진에 실효성이 있는가에 대한 소모적 갑론을박을 떠나,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은 주관적 무게감의 차이로 인해 발생할 사회적 소통의 문제이다. 광고의 생명은 소통과 공감이다. 더군다나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공익광고가 사용하는 그 소통의 방식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문화와 제도의 변화를 겪으면서 수천 년의 흡연문화가 금연의 역사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은 겨우 50년 정도이다. 이전에 담배는 하나의 기호이며 인류문화의 일부였고 또한 소통과 공감의 도구였다. 조선시대에 처음 담배가 들어왔던 우리나라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는 기세등등하기만 했던 흡연 역사의 얼굴은 주름지고, 건강이라는 법정에서 과거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온갖 추악한 죄과를 폭로 당하는 피고인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된 금연의 역사는 올 해 막 성년식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어떤 연유인지 그 의식이 너무도 요란하고, 앞서간 문화와 세대에 대한 배려나 관심이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의식을 지켜보는 이들도 위아래 눈치를 보느라 앉아있지도 떠나버리지도 못하는 외국의 유행을 따라 급조된 담론의 장이 되어버렸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으레 서두로 꺼내는 말이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다. 이 한 구절이 몇 세대의 갭을 메우고 시대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서로의 삶의 이해하는 소통과 공감의 은유적 표현이었던 것이다.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각박한 시대를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호랑이 담배 피는 시절’의 은유로 대변되던 양반과 같이 아무런 제한 없이 흡연을 하던 17세기에 대한 서민들의 그리움을 표현하는 것 자체만으로 천덕꾸러기 낙오자밖에 될 수밖에 없다.

 잔치는 끝났다. 올해 담배 세수가 1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지난해보다 4조원이 더 걷히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어보면, 유행 따라 급조된 잔치치고는 꽤 성공한 것 같다. 막 약관의 나이를 지난 청년의 벼락치기 성공을 바라보면서 부럽기도 하면서도, 왠지 마음이 서글퍼지는 것은 왜일까? 할머니가 얘기해주시던 ‘옛날 옛적 호랑이’는 담배 연기의 무게감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걸까? 그리고 또 우리는 무엇을 잃어갈 준비를 해야 하나? 담배 연기로 인해.

강도형 서울대 의대 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