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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금융이 살 길은 경쟁과 혁신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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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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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룡
금융위원장

런던 템스강 동쪽의 카나리워프(Canary Wharf), 황폐했던 매립지가 금융중심지로 탈바꿈한 곳이다. 국제금융시장과 호흡을 같이하는 카나리워프의 금융 사와 금융인들을 보면서 세계를 움직이는 ‘피’가 왕성하게 공급되고 있음을, 또 그 힘을 느끼곤 했다.

 영국에 ‘카나리워프’가 있다면, 우리에겐 ‘한강’이 있다. 국제사회는 과거 우리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높이 평가하지만 유독 금융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카나리워프’는 커녕, 저개발국과도 비교될 때가 있는 우리 금융의 현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우리가 과거의 낡은 틀에 갇혀 있는 사이, 저금리, 고령화, 금융-정보기술(IT) 융합 등 금융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판을 바꾸지 않으면 자칫 금융이 고사 당할 수도 있는 중요한 갈림길이다.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에 지난해 3월부터 9개월간 숨 가쁘게 금융개혁의 여정을 이어갔다. 금융개혁은 한마디로 ‘경쟁’과 ‘혁신’을 금융산업에 확산시키는 것이다. 자율에 기초한 시장에서 금융회사들이 진검승부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창의적인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끊임없이 출시해야 한다.

 먼저 금융당국부터 통렬한 자기반성을 했다. 아직도 과거 규제패러다임에 빠져 시장을 무시했던 것은 아닌지 되물었다. 진정한 경쟁은 자율에서 비롯되기에 금융당국부터 일일이 간섭하는 코치가 아니라 공정한 심판으로 거듭나려 했다. 컨설팅 위주로 검사방식을 바꾸고, 개인 제재도 축소하고 있다. 지난 8개월간 431개 금융회사와 156개 중소기업을 찾아다니며 불편한 점을 청취하고 고쳤다. 22년 만에 보험업에 대한 가격과 상품의 사전 규제체계를 폐지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자율을 해치는 낡은 규제 개혁을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금융회사도 더 이상 현실에 안주할 수 없다. 좀 더 좋은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된 계좌이동서비스는 한 번 클릭으로 주거래 통장을 손쉽게 옮길 수 있게 했고, 은행들은 고객을 잡기 위해 우대금리와 서비스 경쟁을 하고 있다. 내 손안에 은행인 인터넷전문은행은 기존 은행보다 더 높은 예금금리와 중금리 대출을 제공하며 23년간 고여 있던 은행업에 메기 역할을 할 것이다. 올해 출시될 만능통장(ISA)은 통장 하나만 만들면 예금·펀드 등 다양한 상품을 담을 수 있고 비과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이제 금융회사는 ‘당국의 눈치’가 아니라 ‘시장과 고객’을 보고 경쟁과 혁신에 나서야 한다.

 “금융개혁이 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개혁은 단칼에 해결되는 쉬운 과제가 아니다. 영화 ‘마션’에선 화성에 혼자 떨어진 주인공이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곧바로 다른 문제가 터진다. 하지만 이를 하나하나 극복해나가는 노력이 결국 그를 지구로 돌아오게 한다. 금융개혁도 마찬가지다.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일관성 있게, 그리고 결코 쉬지 않고 바꿔 나가다 보면 어느덧 우리가 꿈꿔왔던 새로운 금융세상, ‘돈이 도는 활기찬 경제’에 도달하리라 믿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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