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스펙 열풍은 沒개성 결과 … 그대로의 모습 사랑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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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호 10면

다사다난했던 ‘청양(靑羊)의 해’ 2015년이 저물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북한의 준전시 사태 선포,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 등 많은 사건과 스토리가 있었다. 한국인도 그렇지만 200만 명에 가까운 주한 외국인들도 한 해를 보낸 감회가 컸을 것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그동안 중앙SUNDAY 외국인 칼럼과 글로벌 톡톡 코너에 흥미롭고 날카로운 글을 게재해온 외국인 필자들을 초대해 송년 좌담회를 했다. 러시아의 이리나 코르군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일본의 오누키 도모코 마이니치신문 서울특파원, 터키의 알파고 시나씨 지한통신사 한국특파원, 연세대 국제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중국의 왕웨이 중앙일보 인턴기자가 참석했다.


-올해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오누키 도모코=메르스 사태다. 한마디로 ‘역시나’였다. 지난해 아이가 한 대학병원에서 지냈을 때의 경험과 다르지 않았다는 말이다. 당시 병원에 갔는데 깜짝 놀랐다. 모자병동인데 누구든 다 출입이 가능했다. 보호자들은 환자와 좁은 침대에서 같이 누워있거나 서 있어야 했다. 올해 메르스 사태 때 문제가 됐던 것들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병원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었다. 메르스 사태 때 환자 한 명이 병실을 찾은 여러 사람에게 병을 옮겼다. 그래서 “아! 그럴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일본은 병실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한다. 보호자는 두 명만 들어갈 수 있으며 오후 9시까지만 환자와 같이 지낼 수 있다. 그 이후에는 환자가 힘들어해도 병원에 맡기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리나 코르군=메르스 사태 여파로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줄었던 게 인상적이었다. 시끌벅적했던 서울 시내가 조용해져 너무 낯설게 여겨졌다. ▶알파고 시나씨=박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성실한 동맹국인 한국의 지도자가 어떻게 그런 자리에 갈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놀라웠다. 한국의 외교 전략이 뛰어난 것 같다. ▶오누키=9월에 전승절을 취재하기 위해 베이징에 갔다. 일본에선 반대로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가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런 행사에 참석할 수 있었을까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 언론이 그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우리와는 시각이 좀 다르구나라고 생각했다. 한국은 지금도 북한과 대치 중이라는 사실을 일본 사람들이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한국을 다이내믹 사회라고 한다. 어디에서 이것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나. ▶알파고=한국에 처음 왔을 때 볼링장이 참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휴대전화를 수시로 바꾸는 등 한국에서 트렌드 변화는 너무 빨라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걸 보고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하지 않나. ▶왕웨이=한국에 온 지 8년 됐는데 처음에 한국이 다이내믹 사회라고 많이 느꼈는데, 최근엔 중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이 좀 덜 다이내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중국도 경기가 좋지 않기 때문에 국내에서 만중창신(萬衆創新·전 국민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새로운 시도에 열광하는 것이 눈에 띈다. 첨단기술과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갖춘 각종 시설과 서비스도 많이 생기고 있다. 한국 젊은이들이 활기차게 주도적으로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떨쳐 일어나서 뒤쫓는 중국이 이제야 혁신을 강조해서 당장 큰 효과를 볼 수 없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한국 사회가 이제 좀 긴장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오누키=맞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은 스펙 쌓고 공부하느라 지치고 피곤해 보인다. 반반인 것 같다. ▶코르군=젊은이들이 지친 면도 없지 않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는 다이내믹 사회가 맞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학술회의 경험은 이채로웠다. 러시아에서는 그냥 편안하게 본인 경험이나 연구 결과를 나누는 모임이라 느긋한 마음으로 참석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아침부터 격식을 갖춰야 한다. 개막사와 축사를 포함해 오프닝의 격식을 갖추는 데만 한 시간 이상 걸린다. 기념사진도 찍고. 발표한 다음에는 식사하고 다시 온다. 짧은 거리라고 해도 해외에서 손님이 오면 무조건 자동차로 모신다. 그리고 또 돌아와서 회의하고 다시 많이 먹는다.

-북한이 준전시 사태를 선포한 상태에서 실제 비무장지대(DMZ)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살아본 느낌은 어떤가. ▶알파고=백령도는 북한 땅 코앞에 있다. 이곳에 관광진흥 목적의 소형 공항을 건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파트도 들어선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사실 북한의 위협을 잘 실감하지 못하는데 국제적으로는 조그마한 일만 생겨도 난리가 난다. 현장에 와보지도 않고 심각한 것처럼 보도한다. ▶코르군=위험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벌써 60년 넘게 이런 상태로 살아왔다. 한국의 대비태세가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 관련 뉴스가 보도되면 가끔씩 친구들로부터 괜찮냐고 묻는 전화가 온다. 그때는 “한국 증시를 보라”고 말한다. 반응이 주식시장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위험이 있기는 한데 바로 지금 내일 뭐가 닥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누키=2013년 4월 북한이 개성공단 근로자들을 일방적으로 철수시키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한국 특파원으로 부임한 다음날 바로 현장취재를 가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그냥 평소대로 살고 있어서 궁금했다. 한국에서는 이제 북한의 도발이라는 게 일상화돼 있어서 일일이 긴장하지 않는 것 같다. 일본 사람들이 지진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최근 전북 익산에서 규모 3.9의 지진이 일어났다고 언론들이 크게 보도했다. 일본 사람들 같으면 “오늘도 또 그런 일이 있었네” 하는 정도로 넘어갈 것 같다. ▶왕=가족들이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걱정하고 심지어 전화해 잠시 귀국하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살아보면 아무런 위험도 못 느끼는 것 같다.


-지난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가 발생했을 때 한국이 테러라는 측면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보도도 있었다. 한국은 치안이 잘 돼 있어서 매우 안전하다는 말도 듣는다. ▶코르군=전반적으로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여성들도 그렇고 아이들도 다니기에 안전한 것 같다. 외국인으로서는 가끔 불안할 때가 있기도 하다. 서울 일부 지하철 노선에선 가끔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와 다짜고짜 어디 가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몹시 놀랐다. 사회가 불안전해지면 한국에서도 마음 놓고 다니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왕=안전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휴대전화나 지갑이 떨어져도 다시 찾게 된 주변의 사례가 많다. 근데 전혀 불안감이 없이 사는 것도 아니다. 메르스 때 마스크 안 쓰고 다니는 사람들,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 가리지 않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알파고=한국에는 ‘안심 귀가 도우미’ 제도도 있는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일본과 한국이 너무 마음에 든다. ▶오누키=혼자 외국에서 여기저기 다닌 적이 있다. 여행 가면 일본에 있을 때보다 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한다. 한국은 일본보다 이상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적은 것 같다. ▶알파고=한국이 안전하기 때문에 밖에 나가서도 한국에서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외국에선 도와주겠다고 해서 덜렁 따라가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처럼 하면 안 된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인구가 전체의 3%가량 되는 174만 명이라고 한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글로벌화되고 다문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나. ▶왕=한국에 처음 왔을 때 “중국인들은 머리를 자주 감니” “중국 가정에도 냉장고가 있니” 등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이젠 “중국인들이 다 부자지” 같은 질문들을 받는다. 중국의 발전에 따라 외국에서 사람들이 주는 시선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코르군=2003년 12월 처음 한국에 왔다. 그때는 한국에서 외국 자동차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지금 특히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서울 일부 지역에선 한국 자동차를 보기가 힘들 정도다. 그만큼 상황이 바뀐 것 같다. 분명히 세계화가 빨리 진행되고 있다. 서울에서 택시를 한번 타보라. 택시 운전사들 중에는 외국에서 생활하거나 일해본 경험을 가진 사람이 많다. 오히려 나보다 더 지식이 더 풍부하다고 느꼈다.

-중앙SUNDAY에서 시민문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이것만큼은 꼭 좀 고쳐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알파고=한국 문화에서 남을 배려하지 않는 문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국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제대로 안 따르니까 이런 문제가 생긴다. 한국에선 부모들이 남의 아이를 보고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사다리가 하나밖에 없다. 코끼리도, 호랑이도, 원숭이도, 독수리도 모두 같은 길을 간다. 똑같은 공부를 하기 때문에 아이가 많이 지쳐 있는 것 같다. ▶오누키=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은데 몸을 부딪치는 일이 많다. 고쳐줬으면 좋겠다.


-외모지상주의와 성형수술의 천국이라는데. ▶왕=개개인들의 개성을 덜 중요하게 여겨서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알파고=‘껍질을 보지 말고 그 안에 있는 열매를 보라’는 말이 있다. 터키 유명 연예인들 중에는 잘생기지 않은 사람이 많다. ‘못생긴 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배우도 있다. 너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문화가 필요한 것 같다. ▶오누키=경쟁이 심한 사회이다 보니 외모도 잘생겨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일본은 그렇게 경쟁이 심하지 않다.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손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코르군=동양인의 눈이 얼마나 예쁜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안타깝게 생각한다. 『술 권하는 사회』라는 소설이 있는데 한국은 뭐든지 권하는 사회인 것 같다. 한 사람이 먼저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가는, 그리고 권하는 사회로 변한다. 성형수술이 필요한 사람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다.


-학력을 중시하고 진학용·취업용 스펙 쌓는 데 열중한다는 비판도 있다. ▶왕=주변을 보면 어떤 분야를 좋아해서보다도 필요하니까 스펙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누키=일본도 경쟁이 있긴 하지만 한국만큼은 아니다. 한국은 모두가 좋은 대학에 진학하려고 한다. 일본은 도쿄에도, 교토에도, 홋카이도에도, 규수에도 좋은 대학이 많이 있기 때문에 한 곳으로 몰리지는 않는다. ▶코르군=아이들은 많이 쉬어야 한다. 스펙보다는 여러 가지 사회 경험이 중요하다. 교육을 받는 이유도 사회에서 생활을 잘하기 위한 거다. 한국의 아이들이 똑같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아이가 놀지 않으면 자연과 세계를 볼 기회가 적다. ▶알파고=터키에서는 중학교만 졸업하고도 무역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다.


-한류가 일부 외국에서는 인기가 있다고 하지만 어떤 때는 한국인들의 애국심이나 자부심이 지나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왕=한류가 실제로 경제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현재 계속해서 개발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다만 장기적으로 한류 사업으로 계속 이익을 보고 싶다면 콘텐트 부문에 신경을 더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 사람들도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드라마 내용이나 패턴이 다소 비슷하다고 많이 느끼고 있다. 장기적으로 한류를 발전시키려면 창의적인 시도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파고=나라마다 일부 매니어층이 있을 뿐이다. 한류 콘서트에 가면 자리가 가득 차기도 하지만 터키인 모두가 한류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한류를 어느 정도 국가가 끌고 가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기는 하다. 한류는 대박 소프트웨어다. ▶오누키=K팝이나 한국 드라마가 성공한 건 사실이지만 다들 비슷비슷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음악도 차이가 거의 없어 보인다. 좀 더 다양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비교적 잘사는 나라라고 하지만 국민의 행복지수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오누키=왜 한국 사람들이 불만이 이렇게 많은지 이해가 안 된다. ‘헬조선’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을 읽어봤다. 일본에서는 일자리가 부족해도 불만을 남에게 떠넘기기보다 자기 책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누군가를 탓하는 것을 많이 본다. ▶왕=행복과 불행은 다 비교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한다. 습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결국은 개개인들이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다는 방증이 아닌가 싶다. ▶알파고=선진국이 되면 행복의 변수가 많아진다. 어떤 나라에서는 오늘도 사자에게 사냥당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오누키=가치관이 다양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 많은 사람이 같은 목표로 가는 것 같다. 일본말에는 ‘좋은 학교’라는 표현이 없다. 그런 말에 놀랐다. 이 말이 한국 사회를 압축해서 표현하는 것 같다. 사람에 따라 좋은 학교는 다를 수 있는데 한국은 특정 학교를 말하는 것 같다. ‘미워한다’는 표현도 일본에선 거의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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