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명 마을 주민의 성탄선물 로또…난민 35명도 인생역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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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복권 엘고르도 당첨번호를 들고 있는 스페인 로케타스데마르 주민 [AP=뉴시스]

스페인의 작은 해안도시에서 난민 35명을 포함해 1600명이 복권 1등에 당첨되는 행운을 누렸다. AP통신은 23일(현지시간) 스페인 남부 알메리아주 로케타스데 마르시에서 올해의 엘고르도(El Gordo, 뚱보복권) 당첨번호 ‘79140’이 탄생했다고 보도했다. 마을 주민 1600명이 받은 상금의 합은 무려 8000억원. 주민들은 기념 티셔츠까지 만들고 축제를 열었다. 옆 마을 라우하르 데 안다락스는 배가 좀 아팠다. 이 지역의 한 고등학교가 당첨 복권을 대량 구매했다가 수학여행자금을 마련하고자 옆 마을 주민들에게 되팔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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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 난민 출신의 응가녜가 복권 당첨 후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AP=뉴시스]

특히 이번 당첨자 가운데는 2007년 세네갈에서 나무보트를 타고 스페인으로 건너온 난민 출신 이주자 응가녜(35) 등 난민출신이 35명이나 포함되어 화제가 됐다. 하루 5유로(6000원)을 벌며 과일 따는 일을 하던 응가녜는 “바다를 떠돌던 나를 구해준 스페인 정부와 스페인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모로코 출신 이민자인 이마네스 나아마네(18)도 1등 당첨의 행운을 누렸다. 이마네스는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복권에 당첨되어 이제 우리도 원하는 걸 살 수 있게됐다”고 밝혔다.

1812년부터 시작되어 200년의 전통을 가진 스페인 복권 엘고르도는 1년에 단 한번 크리스마스 직전에 추첨하는 로또다. 총상금만 22억유로(2조 8000억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특이한 점은 1등 1명에게만 행운을 몰아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엘고르도는 뚱보복권이라는 의미에 맞게 당첨자가 최대한 많이 나오도록 만들어졌다. 복권구매자의 10%이상 수천명이 당첨된다. 1등만 해도 최대 1600명까지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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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고르도 복권. 6자리의 번호가 있다. 데시모는 20유로(2만 5000원)다.

비밀은 엘고르도의 특징에 있다. 엘고르도는 5자리의 숫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고유번호 하나당 160장이 발매되어 묶음으로 판매한다. 이를 ‘비예테’라 부르고 이 비예테도 다시 10장의 ‘데시모(1/10이라는 뜻)’로 나눠 판매할 수 있다. 결국 번호 하나를 1600명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당첨번호인 ‘79140’도 이같은 방식으로 나눠져 1600명에게 행운을 가져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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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고르도는 160개의 비예테로 구성되어 있고, 이는 다시 10장의 데시모로 나눠진다.

특정번호를 원한다고 구매할 수 있는게 아니다. 일반적으로 복권판매점에는 10만개의 번호중 1~2개만 배정된다. 특정 번호를 구매하려면 그 지역까지 여행을 가서 판매점을 찾아 번호를 구매해야 한다. 비예테 1장의 가격은 200유로(25만원)으로 혼자서 구매하기에는 부담스럽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돈을 모아서 비예테를 구매한 후 데시모(2만 5000원)로 나누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자연스럽게 공동구매가 이뤄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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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엘고르도를 추첨하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확률도 높고 당첨금액도 많아서 스페인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엘고르도 구매가 연례행사처럼 여겨진다. 국민의 90%가 엘고르도를 구매한다는 통계도 있다. 고유번호가 찍힌 나무공 10만개 중 하나를 뽑는 추첨방송은 매년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행운을 나눈다는 의미로 당첨금액도 정해져 있다. 비예테 1장 당첨금은 400만유로(51억 2500만원)이고, 데시모 1장은 40만유로(5억 1200만원)이다. 2등 당첨금은 125만유로로 데시모 1장 구매시 1억 6000만원을 받는다. 6등의 경우 100유로(12만 8000원)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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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케타스데마르 지역은 북서 아프리카에서 스페인으로 넘어오는 길목에 있다.

이번에 로또를 맞은 로케타스데마르는 스페인 남부 해안마을로 지중해를 건너온 북서부 아프리카 이주민들이 많은 곳이다. 이들은 목숨을 건 채 나무로 만든 보트를 타고 바다를 넘어 이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로케타스데마르에서의 삶도 녹녹치 않다. 인구 9만명의 이 마을은 실업률이 31%에 달하며, 이주노동자들의 일자리도 채소ㆍ과일 농장 뿐이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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