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국가인권위 대구 장애인시설 조사 결과

중앙일보

입력

'1994년부터 장애인 시설의 화장실을 청소하고 분뇨 치우기 등 허드렛 일을 했지만 임금은 0원.'

무연고 지적장애 3급인 손모(45)씨 이야기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체·지적 장애인 173명이 거주하는 대구의 한 장애인 시설을 조사해 10여 가지 인권침해·회계부정 사례를 확인했다. 국가인권위 조사에 따라 대구시는 24일 이 장애인 시설에 대한 특별감사반을 꾸리기로 했다.

국가인권위의 결정문에 따르면 20여 년째 장애인 시설에 거주하는 손씨는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하수로 뚫기, 양계장 닭 사료주기, 죽은 닭 수거 같은 일을 했지만 정해진 임금이 따로 없었다. 급여 명목으로 시설 측에서 1만~5만원을 몇 차례 받은 게 전부였다. 2008년부턴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하면서다. 국가인권위 조사에서 그는 "일하지 않으면 (시설 책임자가) 호통을 친다"고 진술했다. 국가인권위는 손씨처럼 정해진 임금 없이 식당에서 식판을 닦는 등 잡일을 한 다른 장애인 2명도 추가로 확인했다.

시설 책임자 등은 장애인의 통장에서 돈을 꺼내 해외여행 경비로 사용했다. 지난해 있었던 일이다. 이들은 장애인 8명과 베트남과 터키·일본·필리핀으로 해외여행을 갔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내야 하는 경비 1690만원을 장애인 통장에서 빼내 썼다. 사실상 장애인의 보호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밀번호 등을 알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2013년 9월엔 시설에 사는 가족 없는 무연고 장애인이 사망하자 통장에 있던 장애수당 등 696만원을 시설 후원금으로 입금시키기도 했다.

회계도 의혹 투성이다.

장애인 시설은 2009년 세금 251만원을 들여 양계장을 지었다. 병아리까지 후원 받았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1600만원 이상의 수익을 냈다. 그렇지만 이익금 중 300만원만 시설에 넣었다. 나머지는 시설의 법인 수익으로 잡아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양계장을 꾸리는 일엔 시설에 사는 장애인도 참여했다.

2010년부터는 장애인 거주 용도로 지은 생활관 중 일부를 시설 책임자의 사택으로 썼다. 상하수도·전기료 등 공공요금까지 시설 예산으로 내면서다. 시설 책임자는 식당에서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지는 돼지갈비·잡채 등 음식까지 따로 그릇에 담아뒀다가 가져다 먹었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18일 사회복지사업법·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시설에 대한 행정조치가 필요하다고 결정문을 통해 권고했다.

전근배(30)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연간 세금 35억원을 지원받아 운영하는 시설"이라며 "책임자를 형사처벌하고 대구시는 세금이 진짜 장애인을 위해 쓰이도록 재조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설 측은 "시킨 게 아니라 장애인 스스로 일한 것이다. 해외여행 경비는 최근 돌려줬다"며 "나머지 조사 결과 역시 규정을 잘 몰라 한 일이고 오해가 있어 억울하다"고 특별감사반 직원에게 해명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