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KDB대우증권 인수전서 경쟁사 앞서는 미래에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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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증권이 KDB대우증권 인수전에서 최고 입찰액을 써냈다. 정부 관계자는 21일 “대우증권 매각 본입찰에서 미래에셋이 KB금융지주·한국투자금융지주보다 더 높은 금액을 써냈다”고 말했다. KB지주와 한투지주도 2조원대를 써냈지만 미래에셋은 이보다 많은 2조원대 중반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셋이 대우증권을 인수하면 자기자본이 7조9000억원으로 늘어 NH투자증권(4조4954억원)을 제치고 압도적인 1위 증권사가 된다. 대우증권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이날 본입찰 결과를 토대로 24일 금융자회사 매각추진위원회와 이사회를 열어 우선협상대상자를 공식 발표한다.

애초 시장에선 자금력이 탄탄한 KB금융의 우세를 점쳤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가장 높은 가격을 쓴 쪽은 미래에셋이었다. 최고가 입찰을 이끈 건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다. 산업은행이 생각하는 적정가치를 정확히 꿰뚫었다는 평가다. 사실 시장의 예상가격은 2조원 이하로, 산업은행이 생각하는 적정가치와 거리가 있었다. 산은이 정한 패키지 매각대상(대우증권ㆍ산은자산운용)의 장부가치는 1조8392억원이다. 당장 대우증권을 청산해도 받을 수 있는 가격이 이 정도 수준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국내 인수ㆍ합병(M&A) 시장의 평균 경영권 프리미엄(20~30%)을 붙인 인수 하한가가 2조2000억원이었다.

그러나 하반기 대우증권의 주가 하락을 이유로 매각가격이 생각보다 높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많았다. 올해 4월 주당 1만8000원이었던 주가가 최근 1만원대 초반까지 떨어진 것을 두고 “적정가치는 1조5000억원이 안 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단순히 현재 주가보다는 장부가치를 기반으로 계산한 내재가치가 중요하다”며 “미래에셋은 내재가치를 높이 평가한 반면 KB금융과 한투는 주가하락을 감안해 가격을 낮춰 잡은 듯하다”고 말했다.
결국 승부의 관건은 경영권 프리미엄이었다. 장부가치를 기준으로 미래에셋은 대우증권 장부가에 높은 프리미엄을 부여한 반면 KB금융과 한투는 프리미엄을 상대적으로 낮게 매긴 셈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산은에 제출한 경영계획서에서 “대우증권을 인수해 세계 금융시장에서 활약할 대형 투자은행(IB)으로 성장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판 골드먼삭스’가 되겠다는 포부다. 미래에셋이 대우증권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1997년 그룹 창립 이후 제2의 전기를 맞게 된다. 미래에셋은 2000년대 초·중반 국내에서 해외펀드 투자 열풍을 일으키며 급성장했지만 2007년 대표 펀드인 인사이트펀드가 ‘중국 투자 몰빵’ 논란 속에 수익률이 반 토막 나면서 명성에 상처를 입었다. 특히 펀드업계 1위인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달리 미래에셋증권은 증권업계 4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 대우증권이 매물로 나오자 박현주 회장은 인터넷전문은행 도전을 접은 뒤 곧바로 1조2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대우증권 인수에 전력을 기울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물론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고용안정ㆍ독립경영 보장을 전제로 KB금융의 인수를 공개 지지했던 대우증권 노동조합과의 관계 설정이 첫 번째 과제다. 반면 KB금융은 2013년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에 이어 또다시 대형증권사 인수에 실패했다. 한투는 숙원이던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대우증권 인수전에는 상대적으로 집중도가 떨어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금력은 KB가 앞섰지만 오너 경영인인 박현주 회장의 인수 의지가 더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아직 승부가 끝난 건 아니다. 애초 산업은행은 ^신속 매각 ^매각 가치 극대화 ^국내 자본시장 발전기여도라는 매각 3대 원칙을 제시했다. 대우증권 매각은 2년전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매각과 달리 최고가 입찰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인수가격을 중심으로 평가하지만 국내 자본시장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후보자에게는 가격점수 외에 추가 가점을 주겠다는 얘기다. 이날 본입찰에서 인수가격ㆍ자금조달계획 외에 경영계획서를 따로 제출받은 이유다. 가격을 높게 적었더라도 자본시장 기여도에서 뒤지면 우선협상후보자로 선정되지 못할 수도 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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