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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치고 딸은 켜고, 김대진 부녀 앙상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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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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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무대에 서는 피아니스트 김대진(오른쪽)과 바이올리니스트 김화라 부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버지와 딸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6번 1악장을 연주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피아노와 딸의 바이올린 사이에 산들바람이 부는 듯했다. 15일 서울 반포동 서래마을 연습실에서 피아니스트 김대진(53)과 바이올리니스트 김화라(24)를 만났다. 부녀(父女) 연주가는 20·26·27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베토벤 바이올린과 소나타 전10곡을 완주한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협연
아버지 “바이올린 소리 감싸야죠”
딸 “피아노가 주도권, 맞춰야죠”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은 김대진에게도 첫 도전이다. 그는 이 작품들에서 피아노의 관건은 현악기와의 혼합 및 조화라고 말했다. 피아노의 타악기적 요소를 다듬어 현악기와 잘 어울리게 내놓는 작업이라 설명했다. “주위를 보면 타인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이도 있잖아요. 소리의 폭이 넓어야 상대의 소리를 감싸줄 수 있습니다.”

 김화라는 “베토벤은 피아니스트였다”면서 “나중엔 두 악기의 비중이 동등해졌지만, 소나타 6번 이전에는 피아노가 주도권을 쥐고 있기에 바이올린이 피아노에 잘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생큐! 그렇게 생각해줘서.” 라며 김대진이 웃었다. 말 그대로 아빠 미소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0곡 중에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곡은 무엇일까. 둘 다 “10번”이라 답했다. 베토벤이 잘 보여주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김화라는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을 졸업하고 LA 콜번스쿨에서 학업을 계속하고 있다. 수원시향 상임지휘자인 김대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후학을 양성 중이다. 아내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성은이다. 얼마 전 제자인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아들이 음악(피아노)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든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는데 김대진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화라가 피아노에 앉아있는 걸 보고 기겁을 했다. 궁리 끝에 장난감 바이올린을 사다가 쥐어줬다. 김대진의 작전(?)은 성공했다. ‘아빠 악기에서 엄마 악기로’ 관심이 이동했다. 자연스럽게 엄마는 화라의 어린 시절 바이올린 공부에 영향을 끼쳤다.

 김대진은 연주할 때 딸이 자신을 닮았음을 느낀다고 했다. 화려하거나 반짝이기보다는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성향이 비슷하다는 것. “일상에서는 반대예요. 전 신중한 편이고, 화라는 밝고 낙천적이죠. 그건 엄마를 닮았어요.”

 김화라는 오케스트라 악장과 실내악 활동을 꼭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교향곡·협주곡·실내악·독주곡 등 작곡가의 모든 작품을 연주해서 체화시키고픈 바람이다. 딸을 바라보던 김대진이 입을 열었다. “제 귀가 왜 두 개 있는지 아세요? 하나는 연주 파트너로서의 귀, 또 하나는 부모로서의 귀입니다. 상대의 소리를 날카롭게 듣지만 안쓰러운 마음도 크죠. 부녀 앙상블을 남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네요.“

 그래서일까. 부녀 연주자는 있어도 그들의 협연은 눈에 많이 띄지 않는다. 그중 클라우드 프랭크(피아노)와 파멜라 프랭크(바이올린), 미샤 마이스키(첼로)와 릴리 마이스키(피아노)가 알려졌다.

 김화라는 “아빠는 정말 열심히 살면서도 힘들다는 내색 안 하시는 수퍼 대디”라고 했다. ‘수퍼 대디’ 김대진은 2016년 독주회를 연다. 지휘를 하다 보니 피아노가 그리워졌고 반가운 마음으로 피아노를 독대한다 했다.

글=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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