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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도 자녀도 골목길 추억에 빨려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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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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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은 동갑내기 10대 친구들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으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정면 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덕선의 서울대생 언니 보라(류혜영), 지난 회에 ‘수연’으로 이름을 바꾼 주인공 덕선(혜리), 아버지가 학생주임인 동룡(이동휘), 각각 보라·덕선을 좋아하는 선우(고경표)·정환(류준열). [사진 CJ E&M]

시곗바늘만 되돌린 게 아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tvN, 이하 ‘응팔’)은 ‘한 지붕 세 가족’, 아니 ‘한 골목 다섯 가족’ 얘기를 청춘 로맨스 못지 않은 비중으로 다룬다. 전작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와 달라졌다. 시청자 반응은 더 뜨겁다. 5회(지난달 20일) 만에 시청률 10%대(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에 진입, 최근 12~13%대까지 올랐다. ‘응팔’의 매력과 아쉬운 점을 산업부 김준현 데스크(부장), 문화부 이지영·김효은 기자와 함께 짚었다.

[TV를 부탁해] ‘응답하라 1988’

부자와 서민, 위·아래 없이 어울려
주거형태 자체가 찡한 향수 자극
‘감정 표현 못하는 아버지’에 공감
운동권 묘사 어색한 건 옥에티

 우선 배경인 서울 쌍문동의 ‘골목’은 ‘응팔’이 불러낸 최고의 복고 아이템으로 꼽을 만하다. 요즘과는 이웃의 심리적·물리적 거리가 전혀 다르다. 주인공 덕선(혜리)과 동갑내기 친구들은 물론, 그 부모와 형제·자매까지 형편을 훤히 안다. “한 골목에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셋방 사는 사람도, 남편없이 혼자 아이 키우는 사람도, 공부 잘 하는 아이도, 못하는 아이도 평등하게 어울려 지내던”(이지영 기자) 기억과 감성을 자극한다. 설령 “선우 동생 진주(김설)또래였던” 세대라도 “‘한 지붕 세 가족’ 같은 드라마를 보고 자란 데다, 이웃끼리 친목을 나누는 문화가 어렴풋이 기억나서”(김효은 기자) 낯설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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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1971년생인 덕선처럼 지금 40대 이상 시청자로서는 ‘응팔’의 부모·자녀 얘기에 고루 공감하는 “역할의 전이”(김준현 부장)도 가능하다. “극 중 아버지들은 내 또래, 극중 아이들은 지금 우리 아이 또래인 동시에 그 시절의 내 또래”였기 때문. 생일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정환아빠 성균(김성균), 어머니 장례에서 뒤늦게 울던 덕선아빠 동일(성동일) 등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감정 표현 잘 못하는”(김효은 기자) 우리네 아버지 세대, 혹은 지금 아버지가 된 세대를 떠올리게 한다. 성균의 “늘어진 런닝셔츠”(김준현 부장), “도톰한 내복차림”(이지영 기자) 같은 디테일 연출도 뛰어나다.

 ‘응팔’은 병풍에 그치는 캐릭터가 거의 없다. 여러 인물이 번갈아 중심이 되어 ‘웃음+감동’ 코드를 거듭하는 에피소드 위주 구성이다. 캐릭터 맞춤 캐스팅, 신진에서 중견까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이 뒷받침이다.

물론 청춘 로맨스, 특히 덕선의 ‘남편찾기’는 매회 기대감을 부추기는 중요한 요소다. 초반부터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란 말도 나왔지만, 최근 바둑천재 택(박보검)이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예고편마저 로맨스에 대한 낚시성 영상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반응은 좀 다르다. 40대 이상은 “설레고 좋아하는 사춘기 감정이 보기 귀여울 뿐, 누구와 연결될지 10대 시청자들처럼 궁금하진 않다”(이지영 기자). 또 남편찾기는 “이미 ‘응사’ ‘응칠’에서 다뤘던”데다 “갈수록 진도가 느려져”(김효은 기자) 다소 피로감을 준다.

특히 성인 덕선(이미연)이 등장하는 장면은 연기 톤이 튄다는 지적이 많다. 오히려 선우엄마 선영(김선영)와 택이아빠 무성(최무성)의 중년 로맨스가 새로운 재미를 주는 요소로 꼽힌다. 그야말로 ‘사랑이 꽃피는 골목’이다.

 시대 고증에서는 서툰 대목도 적지 않다. 일례로 서울대생인 보라(류혜영)를 통해 그려내는 운동권 묘사는 헛헛한 웃음이 나온다. “이를 진지하게 다뤘다면 드라마가 실패했을 테니”(김준현 부장) 그냥 넘어가는 편이 낫다. 사실 더 튀는 건 보라와 선우(고경표)의 로맨스다. “연상녀 연하남, 더구나 대학생·고교생 커플은 80년대에 흔치 않았던” 경우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80년대를 과도하게 이상화하는 경향도 있다. “이웃끼리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지나치게 과장된” 데다 “지금 같으면 사생활 침해가 될 수도 있는”(김효은 기자)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는 미덕이 뚜렷하다. “지난 인생을 한창 후회하는 사람들에게”(김준현 부장)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노래 ‘걱정말아요 그대’)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준다.

정리=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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