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유적 파괴 맞서 아프간에 문화센터 짓는 ‘문화 여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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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바미얀 프로젝트’ 공모전에서 우승한 아르헨티나팀의 모형도를 보여준 송첫눈송이씨.

첫눈 오는 날 태어났다고 받은 이름처럼 싱그러운 송첫눈송이(29)씨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이 일터다. 유네스코 대외협력 담당으로 파견된 지 3개월 만에 분쟁으로 들끓는 이 위험지역에 정이 듬뿍 들었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일상 속에서 다양한 페스티벌과 문화행사를 벌이며 서로를 배려하고 원기를 북돋우는 사람들 덕이다.

송첫눈송이 유네스코 대외협력담당
카불서 ‘바미얀 프로젝트’ 진행
한국 56억원 지원, 2017년 완공

 “열악한 상황에서도 노래하고 춤추며 그림자극을 만들고, 마라톤 대회를 여는 한쪽에서 지역 농산물 장터를 열어요. 먼지 풀풀 나는 야외 공터가 무대지만 참여자들 열기가 뜨거우니 유명 극장 안 부럽죠.”

 송씨는 요즘 한국이 유네스코 신탁기금사업으로 진행하는 ‘바미얀(Bamiyan) 문화센터 및 크리에이티브 허브 프로젝트’에 열심이다. 2001년 탈레반이 파괴한 ‘바미얀 석불’ 인근 크와니산 고원지대에 건립될 바미얀 다목적 문화예술 콤플렉스는 한국 외교부가 56억원을 지원해 2017년 말 완공될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공모한 국제건축디자인 공모전에는 117개국 1070개 팀이 도전해 바미얀을 향한 세계인의 관심을 보여줬다.

 “바미얀 문화센터에 대한 카불 사람들 긍지와 기대가 엄청나요. 누구나 이곳에 와서 심신의 평화와 정서적 기쁨을 얻는 외에 교육시설과 문화생산지 구실까지 해내며 공동체의 구심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어요.”

 이를 위해 송씨와 동료들은 개관 뒤 재정문제까지 고려하며 자체 이사회를 구성해 창조적인 운영을 해나갈 수 있도록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다. 특히 한국 지원으로 세워지는 공간이라 송씨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1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하며 문화유산이 파괴되는 곳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연구했어요. 정보기술(IT) 강국인 우리 기술로 자칫 사라져버릴 수 있는 국립아프가니스탄 박물관 소장품을 이미지로 보존하는 ‘디지털 아카이빙’과 ‘가상 박물관’ 등을 지원했지요. 그런 제 노력을 유네스코가 평가해줬기에 카불에 올 수 있었어요.”

 송씨는 성상을 부수고 유물을 팔아넘기려는 탈레반에 맞서 목숨을 걸고 문화재를 숨기고 지킨 학예연구사들을 존경하게 됐다고 했다. 그들의 용기를 지지하는 한 방법이 바미얀 프로젝트의 성공이다. 이번 사업 전반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방송사를 타진하는 한편, 카불의 ‘박트리안 골드 컬렉션’ 한국전 등을 논의하러 서울에 온 그는 “이 프로젝트를 알리려 태국을 거쳐 경주를 다녀왔다”며 자료 더미가 든 큼직한 트렁크를 친구라고 소개했다.

글·사진=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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