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권준헌 "龍 됐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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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더우면 가장 먼저 투수들의 숨이 가빠지게 마련이다. 수은주가 올라가고 태양 입사각이 커지는 데 비례해 투수들의 방어율은 올라간다. 선발투수보다는 매경기 대기해야 하는 불펜이 더 힘들고, 한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마무리투수는 가장 타격이 크다.

특급 소방수로 꼽혔던 기아 진필중과 LG 이상훈이 최근 일부 팬들로부터 '방화범'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 노장진도 지난 20일 SK전에서 9회 무려 6실점하는 빌미를 제공했고, SK 조웅천도 22일 이승엽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패배, 큰 상처를 입었다. 현대 조용준은 더위와 함께 어깨를 다쳐 2군으로 내려갔다.

이런 틈을 비집고 야수출신의 권준헌(32.사진.현대)이 최고 마무리투수로 뜨고 있다.

권준헌은 지난 5일 조용준이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되자 시험삼아 마무리투수로 기용된 후 죽 그 자리에 눌러앉아 있다. 낮게 깔리는 제구력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정면승부를 펼치는 '싸움닭' 권준헌은 오히려 마무리 체질로 보인다. 다른 투수들과 달리 날이 더워지면서 볼 스피드는 더 늘어나고 있다.

지난 22일 수원 한화전에선 현대의 스피드건에 시속 1백53㎞를 찍었다. 슬라이더도 시속 1백42㎞가 나와 '조라이더' 조용준 못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준헌은 29세이던 2000년 3루수에서 투수로 전향했다. 1루 송구는 훌륭했으나 가끔 수비실책을 하는 탓에 '구멍'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퇴출 일보 직전에서 내린 마지막 선택이었다.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은 권준헌은 지난해 5승1세이브 12홀드를 기록하며 없어서 안될 불펜투수로 자리잡았고, 올해는 25일 현재 방어율 2.66에 6승(1패)4세이브3홀드라는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타자들을 상대하고 있다.

현대가 최근 8경기에서 7승1패의 고공비행을 하고 있는 것도 권준헌 덕이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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