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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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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5년 11월 26일 34면>
‘양김 이후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권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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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수많은 국민이 세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분향소를 찾아 애도를 표하고 있다. IMF 환란에 가려졌던 YS의 많은 업적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열기 속에는 YS가 생전에 보여준 ‘통 큰 정치’를 계승하지 못한 채 당리당략과 정쟁만 일삼아온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역설적으로 담겨 있다.

 YS와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집권을 마친 지 12년이 지났다. 그러나 정치권은 양김을 대체할 새로운 리더십을 제시하긴커녕 퇴행을 거듭했다. 양김은 싸우면서도 도울 땐 돕는 경쟁적 협력관계로 파국을 막고 타협을 끌어냈다. 그러나 지금의 여야는 ‘밀리면 끝’이란 강박관념 아래 죽기 살기로 싸우는 ‘원수정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고도성장을 구가했던 양김 시대와 달리 저성장·양극화·저출산·고령화의 4중고에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야의 리더들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불통과 독주, 장외투쟁 같은 구태만 되풀이한다. 경제 살리기 법안들이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어렵게 타결된 자유무역협정(FTA)이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는 상황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최근엔 야당이 거듭된 내홍으로 지리멸렬해지면서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그렇다고 지역감정과 정치자금, 제왕적 공천권에 기반했던 양김식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양김의 투쟁을 정당화해준 독재정권도, 일사불란하게 따라와주던 국민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민주화가 이뤄진 지 30년 가까이 흘렀고 국민의 의식수준도 크게 높아진 지금 필요한 리더십은 ‘작고 낮은 협치의 리더십’이다. 양김 같은 영웅형 정치인 대신 정당 밑바닥에서부터 커온 생활밀착형 정치인들이 소통과 정책 능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은 이런 리더십으로 나아가는 대신 지역주의에 기대 계파정치에만 몰두해왔다. 그 결과 YS나 DJ처럼 멀리 볼 줄 아는 전략가가 사라지고 눈앞의 이익만 쫓는 생계형 정치인들로 국회가 메워졌다. 국회가 힘도 권위도 잃으니 여당 대표는 청와대 눈치 보기 급급하고 야당 대표는 4~5개월마다 바뀌는 신세로 전락했다.

 정치권이 살아나려면 스스로 개혁에 나서는 것 외엔 답이 없다. 여당은 권력자의 거수기에서 벗어나 민심과 소통하고, 야당은 정부를 몰아치면서 반사이익에만 골몰하는 대신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서로 정책으로 경쟁하되, 민생 현안에선 연대하는 협치를 실현해가야 한다. 공정한 경쟁으로 당 대표를 엄선하고, 충분한 시간과 권한을 줘 리더십을 훈련할 기회를 줘야 한다. 당을 다수 국민에게 개방해 인물을 키우는 것도 과제다.

한겨레 <2015년 11월 27일 31면>
끝까지 김영삼의 ‘민주화’ 정신 외면한 박근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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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끝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의 빈소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방문해 운구를 지켜보며 고인을 배웅하는 것으로 대신했을 뿐이다. 해외순방에 따른 감기와 피로누적 등 건강상의 이유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건강보다는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쓴웃음을 짓는다.

 전직 대통령의 첫 국가장에 현직 대통령이 불참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나타난 사회적 추모 열기 속에서 박 대통령은 혼자 ‘외딴섬’처럼 보이고 있는 점이다. 어느 틈엔가 ‘김영삼’의 반대말이 ‘박근혜’처럼 되어버렸다. 그것은 단지 김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악연이나, 고인과 박 대통령 사이에 형성된 과거의 껄끄러운 관계 탓만은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 꽉 막힌 불통의 리더십이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업적과 매력적인 인간적 면모가 추앙될수록 박 대통령이 초라해지는 상황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이를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최근의 국무회의 발언 등을 보면 추모 열기를 아예 무시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박 대통령의 이런 기류는 김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읽은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일제 잔재 청산을 통한 역사 바로세우기” 등은 말하면서도, 정작 고인의 최대 업적인 반독재 민주화 투쟁, 군정 종식 등에 대한 헌사는 거의 없었다. 민주화의 산증인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애써 외면하는 기막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등이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꼴찌”라는 자신의 과거 발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시대 분위기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재조명 열기는 보여준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이제 박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하려 할수록 마이너스 효과가 빚어지게 됐다는 점이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온 국민이 과거 독재정치 시절에 대한 ‘산 역사공부’를 하게 되면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겨냥하고 있는 박정희 시대의 미화라는 목표도 허망해졌다.

 김 전 대통령은 긍정적 유산 못지않게 마이너스 유산도 많이 남긴 정치인이다. 박 대통령이 진정 김 전 대통령을 이기고 싶다면 고인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경계하려고 노력할 일이다. ‘통 큰 리더십’은 본받고, ‘1인 보스 정치’의 폐해는 떨치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거꾸로만 가고 있다. 냉정하고 속 좁은 깨알 리더십은 영결식 불참에서도 확인됐다. 다음 총선에서 친박 세력들을 공천하려고 발벗고 나서는 등 여전히 철 지난 보스 정치에도 매달리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 경시의 문제점은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다. 박 대통령은 이 시점에서 자신의 말을 거꾸로 새기길 바란다. 이대로 가다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꼴찌”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음을 말이다.

[논리 vs 논리] YS의 ‘통 큰 정치’ 계승 강조 vs 현 정권 불통 리더십 부각

<단계1> 공통 주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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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영결식이 지난달 26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엄수됐다. [사진공동취재단]

 2015년 11월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26일 영결식을 마치고 국립현충원에 안장됨으로써 89세를 일기로 기나긴 정치 인생을 마감했다. 장례기간 동안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3만7400여 명, 각 지방자치단체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17만 명 가까운 조문객이 다녀갔다. 정치인들도 여야 정파를 초월해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유지를 받들겠다는 다짐을 쏟아냈다. 퇴임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보여주었던 무관심과 부정적 평가에 비해서는 이례적으로 느껴질 만큼 추모 열기가 뜨거웠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역정은 파란만장했고 평가에 있어서도 공과가 뚜렷하게 갈린다.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일궈내고 시민의 자유와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친일 잔재를 과감히 청산하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등 역사 바로 세우기에도 앞장섰던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권력을 잡기 위해 군부정권과 손을 잡고 3당 합당을 함으로써 지역주의를 고착화하고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환난을 야기한 대통령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듯 극명하게 갈리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함께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 국민과 정치권이 보여준 애도와 추모의 열기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다양하다. 특히 현재 한국 정치 상황과 연계해 그를 따르던 정치인들의 입장과 처신을 평가하는 견해도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단계2>문제접근의 시각차

 중앙과 한겨레는 사설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과 정치권의 추모 열기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데는 같은 입장이다. 하지만 오늘의 정치 상황과 관련한 평가에서는 상당한 시각차를 나타내고 있다. 두 신문은 사설 제목에서부터 분명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중앙>은 ‘양김 이후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권의 과제’란 사설 제목으로 현 정치권 전체의 각성과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한겨레는 ‘끝까지 김영삼의 민주화 정신 외면한 박근혜 정부’라는 제목을 통해 현 정부의 행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중앙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를 ‘YS가 생전에 보여준 통 큰 정치를 계승하지 못한 채 당리당략과 정쟁만 일삼아온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역설적으로 담겨 있다’고 진단한다. 양김 전 대통령이 집권을 마친 지 12년이 지났지만 양김을 대체할 새로운 리더십을 제시하긴커녕 퇴행을 거듭했다는 지적이다. 양김은 싸우면서도 도울 땐 돕는 경쟁적 협력관계로 파국을 막고 타협을 이끌어냈는데 지금의 여야는 아예 죽기 살기로 싸우는 ‘원수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겨레는 박근혜 대통령이 영결식에 불참한 것은 연이은 해외순방에 따른 감기와 피로누적 등 건강상의 이유라는 청와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민은 건강보다는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한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나타난 추모 열기 속에서 박 대통령은 혼자 외딴섬처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과 현 정부의 대응 방식에 집중하고 있다.

 <단계3> 시각차가 나온 배경

 중앙은 여야의 리더들이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불통과 독주, 장외투쟁 같은 구태만 되풀이한다고 강조한다. 경제 살리기 법안들이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으며 최근엔 야당의 거듭된 내홍으로 지리멸렬해지면서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는 주장이다. YS나 DJ처럼 멀리 볼 줄 아는 전략가가 사라지고 눈앞의 이익만 쫓는 생계형 정치인들로 국회가 메워졌다는 지적이다. 한겨레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 꽉 막힌 불통의 리더십이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업적과 매력적인 인간적 면모가 추앙될수록 박 대통령이 초라해지는 상황이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온 국민이 과거 독재정치 시절에 대한 살아 있는 역사공부를 하게 되면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겨냥하고 있는 박정희 시대의 미화라는 목표도 허망해졌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죽음은 한국 사회와 정치권에 근본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정치권의 개혁을 강조하는 주장이나 민주주의와 인권 경시의 문제점을 상기시키는 견해 모두 고인의 뜻을 계승하기 위한 시대적 과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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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다음 주 논점    사법시험 폐지 유예

12월 15일자에는 법무부의 사법시험 폐지 4년 유예에 대한 중앙일보·한겨레의 사설과 권희정 상명대학부속여고 철학교사의 비교·분석 글이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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