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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는 만큼 얻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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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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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정치부문 차장

“맥스(Max), 태어난 걸 축하한다. 정말 멋진 엄마와 아빠를 뒀구나. 두 분의 결정을 듣고 흥분됐어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와 아내 프리실라 챈 부부가 딸 맥스를 낳은 뒤 페이스북 지분의 99%(현 시가 약 52조원)를 자선사업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지난 1일(현지시간) 멀린다 게이츠가 저커버그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멀린다도 남편인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빌 게이츠와 재단을 만들어 자선활동을 펴고 있다. 2008년까지 360억 달러(약 42조원)를 기부하고 매년 추가로 기부한다.

 헌신의 연대(連帶)는 다른 이들에게도 영감을 안겼다. 이탈리아 출신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 등 유명 인사들이 존경과 감사를 표했다. ‘좋아요’가 700만 개나 달린 저커버그의 페이스북에는 ‘맥스에게 쓴 편지만큼 멋진 글은 본 적이 없다’는 세계인의 반응이 꼬리를 물었다. 자신의 것을 내려놓는 태도에 대중은 감동했다.

 공교롭게도 두 부부를 보며 한국 제1야당의 두 정치인이 떠올랐다. 문재인과 안철수다. 지난달 18일 새정치민주연합 문 대표가 광주에서 연대를 제안하자 안 의원은 11일 후 거절하고 전당대회 개최를 역제안했다. 그러자 문 대표는 3일 전대를 거부하고 마이웨이를 선언했다. 저커버그나 게이츠와 달리 서로에게 요구를 주고받았을 뿐 자신을 내려놓진 않은 것이다.

2012년 대선 때 야권 대선후보 경쟁을 벌였던 두 사람은 왜 자신들이 인기를 끌었는지를 잊은 것 같다. 안 의원은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한 뒤 백신을 무료 배포했다. 취업난에 지친 젊은이들을 찾아가 눈 높이를 낮추고 대화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 때는 훨씬 높은 지지율을 보이면서도 후보직을 박원순 시장에게 양보했다. 대선으로 직행하기 위한 수순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자기를 내주는 그의 행보에 대중은 열광했다.

문 대표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부터 정계 입문 권유를 받았지만 응하지 않았다. 정치인 노무현이 급할 때 쌈짓돈을 내주긴 했어도 공천을 받으려고 줄을 대지 않았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사퇴한 뒤 히말라야로 떠나기도 했다. 욕심이 없어 보이는 태도가 그를 대선후보로 만든 동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랬던 두 사람은 대선후보 단일화 실패 이후 점점 국민의 마음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 서로 내가 적임자라고 주장하는 오만, 나만이 혁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 우리 세력만이 역사적 소명을 이뤄낼 수 있다는 배타적 자세…. 놓기보다 움켜쥐려는 이들이 리더인 새정치연합에선 주류와 비주류의 대립을 넘어 이제 분열까지 잉태되고 있다.

멀린다는 저커버그 부부에게 이런 말을 했다. “씨가 뿌려졌고, 이제 자랄 겁니다. 수십 년 동안 열매를 맺겠지요.” 문 대표와 안 의원이 지리멸렬한 야권에 어떤 씨를 뿌리려 하는지 묻고 싶다. 가지려 할수록 잃을 것이고, 내려놓을수록 얻을 것이란 말도 해주고 싶다.

김성탁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