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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웨스트민스터와 공적원조, 저커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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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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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런던특파원

영국 의회 건물이 오래됐다고들 여긴다. 다 그런 건 아니다. 웨스트민스터 홀 정도가 1100년 무렵부터 있었다. 1834년 대화재로 대부분 전소됐고 1840년부터 30여 년간 다시 지어졌다.

 더 ‘젊은’ 건물도 있으니 하원 회의장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5월 나치독일의 공습으로 외벽만 덩그러니 남을 정도로 파괴됐었다. 지금 건물은 50년 개관한 것이다. 당시 의원들은 “동일한 자리에 동일한 건물을 세우겠다”고 결정했다. 재 속에서 되살아나는 불사조를 연상했으리라.

 실제 외양이 달라지지 않았다. 의원들이 앉을 자리가 340여 석에서 430여 석으로 늘었다는 게 차이다. 재적 의원이 600명을 넘으니 모두 앉을 수 없다는 건 여전했다. 금박으로 치장한 상원과 달리 별 장식도 없다.

 진정으로 두드러진 게 있는데 그건 눈으론 안 보인다. 바로 연대 정신이다. 회의장 건설에 기여한 국가들이다. 몇 나라가 자재를 제공했을 것 같은가.

 회의장 한가운데 있는 대형 테이블은 캐나다, 그 주변의 의자 세 개는 남아공, 하원의장이 앉는 의자는 호주가 기부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공문서 송달함 두 개는 뉴질랜드, 잉크스탠드는 짐바브웨산이다.

 투표 때마다 이용-영국은 전자투표를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발로 투표한다-하는 찬성 의원들이 모이는 통로는 나이지리아, 반대 의원들의 통로는 우간다 몫이었다. 회의장으로 통하는 남문과 북문은 각각 파키스탄과 인도의 원목이 사용됐다. 회의장 내 시계는 북아일랜드에서 만들었다. 모두 50여 개국이 참여했다.

 윈스턴 처칠은 “우리가 건물을 만들었지만 그 후엔 건물이 우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공간은 사유의 결과이지만 동시에 사유를 지배하기도 한다는 의미다.

 이를 떠올린 건 최근 영국의 예산 논의 과정을 보면서다. 긴축의 칼을 무지막지하게 휘두르던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이 세금 공제 혜택을 축소했다가 여론의 역풍에 백기를 든 일이 있었다. 그가 손을 안 댄 데가 있으니 공적원조였다. 2010년 이래 국민총소득(GNI)의 0.7% 선을 유지했다. 그간 영국 경제가 선전한 덕에 예산이 40% 늘었다. 영국보다 더 지출하는 나라는 오로지 미국뿐이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부부의 기부 소식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사실 국가도 다르지 않을 게다. 우린 GNI의 0.25%를 공적원조에 쓰겠다고 약속하고 약속했건만 계속 약속인 채로 남아 있다고 알고 있다.

고정애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