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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강자를 만드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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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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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자초지종에 다가갈수록, 당사자 하소연을 들을수록 글쓰기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 그어져 있던 선악의 경계선이 희미해지고 무엇이 정의인가에 답하기가 곤혹스러워진다.

 지난달 30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성일중학교에 다녀왔다. 주민들의 발달장애인 직업능력개발센터 건립 반대 투쟁이 계속되는 곳이다. 그들은 두 달간 학교 정문에서 공사 차량의 진입을 막았다. 운동장 왼편의 학교 건물이 센터로 리모델링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지역 이기주의의 현장으로 보도된 곳이다.

 편견과 이기심이 체면을 뚫고 거침없이 본색을 드러낸 생생한 모습을 보려 했다. 지난해 서울 강서구에서 벌어진 특수학교 설립 반대 운동과 다를 것 없는, 근거 없는 아파트값 걱정에 주민들이 똘똘 뭉친 서글픈 현실의 목격자를 자청했다.

 그런데 도착 10분 만에 생각이 흔들렸다. ‘서울커리어센터’라는 이름이 붙을 이 센터의 출입구는 연립주택형 빌라들이 줄지어 있는 주택가 쪽으로 나게 돼 있었다. 등하교 시간이 정해져 있는 학교와 달리 센터는 수시로 교육생 등이 오가야 하기 때문에 교문 공유가 쉽지 않다. 따라서 센터가 문을 열면 주택가 좁은 골목이 센터의 출입 통로가 된다.

 주민대책위 천막에서 만난 이들은 다양한 반대 이유를 댔다. 그중에서 “여중생이 행동 통제력이 약한 청년들과 자주 마주쳐야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는 말은 무시하기 힘들었다. 발달장애인은 타인과의 관계나 위험에 대한 분별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옳건 그르건 그들이 그런 걱정을 갖고 살아가게 되리라는 점은 분명했다. 성일중은 남녀공학이고 이 센터의 교육 대상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다.

 서울시교육청과 장애인고용공단은 센터를 복지시설에 입주시키는 것도 고려했다. 그렇게 했다면 주민과의 마찰은 없었다. 하지만 학생 수가 크게 줄어든 이 학교의 공간을 활용하는 저비용의 방안이 선택됐다. 유휴시설을 이용하는 성공적 ‘정부3.0사업’으로 규정됐다. 그 바람에 선한 약자를 지키는 일이 ‘시시한 약자’인 장애인 가족과 ‘시시한 강자’인 주민들이 싸우는 비극이 됐다.

 경찰력 투입으로 30일 공사가 재개됐다. 발달장애인 직업능력개발센터 서울 1호는 그곳에 그대로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교육청은 2호, 3호의 계획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다음에는 돈이 더 들어도 보란 듯이 번듯한 곳에 세우기를 바란다. 보통 주민을 초라한 투사로 만들지 말자.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