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 직접 상담하는 검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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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얘기를 다 해서인지 속이 다 시원하네요."

지난 21일 광주고검 민원인 상담실을 찾은 정모(62.자영업)씨는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다.부동산 투자금을 다 돌려받지 못해 공동 투자자를 광주지검에 횡령 혐의로 고소를 했으나 최근 무혐의 처리되자 속앓이를 해오다 광주고검 민원인 상담실을 찾은 것.

토요일인 이날 1시간 넘게 상담에 나선 이는 이범관(李範觀)광주고검장.李 검사장은 사건 기록을 꼼꼼히 살피고 鄭씨의 얘기를 다 들은 뒤 "당신의 주장은 옳지만 형사상 처벌할 수 없으니 민사로 다퉈보라"며 鄭씨가 납득할 때까지 설명했다.

李검사장이 검사장실 옆에 민원인 상담실을 마련하고 직접 민원인을 맞은 것은 지난 5월부터.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검사와 대화'등을 통해 검찰과 일반의 정서가 너무 어긋나고 동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검찰이 스스로 변화하는 자세를 보여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검사들이 업무폭주 등으로 사건 당사자들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주지 못해 불만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민원인들이 검사의 얼굴도 못봤다는 하소연이 나오지 않도록 직접 나서기로 했다.

검사들에게도 '1분 더 듣기 1분 더 말하기'를 강조했다.

그가 지금까지 상담한 민원인은 모두 15명에 이른다.30대에서 60대까지 광주고검 상담실을 찾은 이들은 그가 모두 만났다.

50대 민원인이 법무사 사무실에 맡긴 공탁금을 사무장이 임의로 횡령해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을 접하고 20여건의 유사한 피해사례에 대해 광주지검에 내사를 지시했다.

3천만원을 떼인 30대 일용 노무자에게는 법률구조신청을 안내하고,다단계 판매 사기사건 피해를 입은 40대 주부에게는 처리 결과를 알려줬다.

또 지검.지청의 수사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항고사건의 경우 당초 사건을 수사한 곳으로 되돌려 보내는 재기(再起)수사명령 대신 고검 검사가 직접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고검 검사들이 수사를 분담,검사 편의보다 민원인 입장을 반영하자는 취지다.

그는 "검사들이 밀려드는 사건 속에서도 당사자들의 얘기를 충실히 듣고 더욱 신중하게 처리하려고 애쓰고 있다"며 "국민에게 다가서려는 검찰의 노력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고 했다.

이 검사장은 경기 여주가 고향으로 14회 사시에 합격한 후 대구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창원지검 통영지청장.법무부 공보관.대통령 민정비서관.서울지검 검사장 등을 거쳐 지난해 8월부터 광주고검장으로 재직해왔다.

광주=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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