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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 없는 스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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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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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역시 조성진이다. 다른 대회도 아니고 쇼팽 콩쿠르 우승이라니. 굳이 세계 3대 콩쿠르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아도 폴리니, 아르헤리치, 지메르만, 부닌, 윤디 리로 이어지는 역대 우승자 이름만으로도 이 21세 청년이 이룬 위업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으리라. 본인은 물론이고 우리 음악계 최대 경사이며 자랑이다.

 그의 우승은 침체돼 있던 클래식 음악에 모처럼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조성진의 음반이 아이유의 신곡 앨범을 제치고 음반 판매 1위를 차지했다는 뉴스까지 들린다. 클래식 음반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라니 그야말로 반갑고 한편으로 생경하기까지 하다. 언론의 힘이 컸다. 평소에 클래식 음악에 무관심하던 언론들이 앞다투어 조성진의 성공 스토리를 보도했으니 말이다. 그는 언론이 좋아할 만한 스토리텔링도 갖추었다. 무엇보다 그의 재능은 확실히 천재적이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유학을 간 것도 아니니 ‘토종의 힘’ ‘국내 클래식 영재 교육의 승리’라는 감동적인 수사가 빛을 발한다.

 그러나 그에게 쏟아지는 언론의 찬사가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하다. 언론은 벌써부터 제2, 제3의 조성진을 운운하며 유망주 소개에 열심이다. 그렇지 않아도 입시와 콩쿠르 일변도인 음악계가 이를 계기로 더 기형적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지금도 우리는 이미 콩쿠르 초강국이다. 1995년 이후 국제 음악 콩쿠르의 결선에 올라간 한국인만 300명, 우승을 따낸 연주자는 70여 명에 이른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우승에 목마른 듯하다. 그러나 과연 콩쿠르 우승이 전부일까. 아니 그보다 먼저 예술에 순위를 매기는 것이 맞는 것일까.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면서 노력했지만 콩쿠르에서 입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콩쿠르로 대변되는 우리나라 피아노 교육의 현실은 끔찍할 정도다. 피아노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혹독한 경쟁이 시작된다. 어려서부터 대학 입시에 초점을 맞춰 이루어지는 교육은 테크닉 연마일 뿐 예술적 감성이나 창의성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소수의 아이를 제외하고는 좋은 선생을 만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다. 음악에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경험 많은 선생 밑에서 도제식 교육을 받아야 실기 실력이 느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교수가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불법이다. 레슨은 고사하고 아이들의 연주를 들어주거나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는 행위조차 구설에 오르기 일쑤다. 과열된 경쟁과 입시 부정이 낳은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스무 살이 되어 교수를 처음 만나는 현재의 음악교육 시스템에서 토종의 국제 콩쿠르 우승이 기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콩쿠르 입상자는 그렇게 많은데 왜 클래식은 청중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일까. 주변에 자기 돈 내고 클래식 공연을 갔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 인터파크의 공연 매출에서 클래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3.6%에 불과하다. 매년 전국에서 수천 명의 학생이 음악대학을 졸업하지만 그중에 연주만 해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뒤늦게 교육부가 취업률을 문제 삼아 음악대학 정원을 줄이고 있지만 대학이 취업준비 학원은 아니다. 공급이 많은 것만 문제일까? 청중을 끌어들일 개성 있는 음악가가 없는 것이 문제이고, 1등이 아니면 귀 기울이지 않는 청중도 문제라면 문제다.

 훌륭한 청중이 훌륭한 예술가를 만든다. 척박한 땅에서 가끔 혜성처럼 나타나는 천재 예술가는 기적일 뿐, 그것에 기대는 순간 발전은 없다. 천재는 태어나고 청중은 만들어진다. 안타깝게도 국제무대에서 한국 음악가들의 부상과는 반대로 국내 청중의 기반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예술적 감성과 공감을 키울 수 있는 학교의 음악 교육은 이미 죽은 지 오래다. 또한 성인이 돼서도 음악 청중이 될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다. 조직에 대한 충성과 성과에 대한 압력이 사람들을 무미건조한 회사형 인간으로 만들고 있으니까. 프랑스 파리가 예술의 도시인 까닭은 예술가를 많이 배출해서라기보다 오히려 다양한 예술가를 품어주는 청중이 많아서다. 스타가 없는 사회도 청중이 없는 스타도 불행하기는 마찬가지다. 스타를 품어줄 청중이 그립다.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