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결국 정부 개입 부른 해운 구조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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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두 회사의 합병을 권유하고 이를 구조조정 차관회의(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에서 공식 논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른바 ‘청와대 서별관 회의’로 불리는 구조조정 차관회의는 금융위원장 주도로 관계 부처 차관들이 산업 구조조정의 큰 그림을 그리는 사실상의 구조조정 컨트롤 타워다. 여기서 해운회사 두 곳을 콕 찍어 합병안을 논의한다는 것은 정부가 부실 기업 구조조정에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의미다. 해운업계는 당장 “강제 합병이 능사가 아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해운업은 조선·철강·건설·석유화학과 함께 구조조정이 시급한 대표적 업종 중 하나다. 2000년대 후반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친 후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물동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현대상선은 지난 10분기 6796억원의 누적 적자를 냈다. 업계 1위인 한진해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올 들어 흑자로 반전하는 데 성공했지만 누적적자가 3000억원이 넘는다. 채권단이 추가 지원을 끊으면 사실상 정상 경영이 어려운 지경이다. 정부의 합병 권고가 단순한 권고를 넘어 강제성을 띠고 있다고 읽히는 이유다.

 ‘조선 빅3’의 초대형 부실 문제가 불거진 뒤 구조조정은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정부·채권단 지원으로 연명하는 3200여 개 좀비기업은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 된 지 오래다. 여기에 원리금 상환 능력이 악화돼 투자 부적격 등급으로 떨어진 ‘잠재 위험 기업’도 갈수록 늘고 있다. 12월 미국 금리 인상이 현실화하면 이자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 이들 ‘좀비 기업’과 ‘잠재 좀비 기업’이 무더기로 무너질 것이란 우려가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곳곳에 널린 ‘좀비 기업’을 방치한 채로는 경제 회생도, 4대 개혁도 공염불이다.

 하지만 정부가 직접 수술칼을 들이대는 것은 마지막까지 신중해야 한다. 최선은 업계 자율의 구조조정이다. 최대주주들이 직접 나서 구조조정을 책임지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낡은 틀부터 깨야 한다. 낙후된 금융시스템과 노동계의 저항, 정치권 개입 등 걸림돌을 정부가 앞장서 치워줘야 한다. 일본의 ‘산업경쟁력 강화법’을 벤치마킹해 부실 기업 인수합병 때 세제혜택을 주는 속칭 원샷법(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의 국회 통과도 서둘러야 한다. 우선 기업들끼리 알아서 해결할 마당부터 깔아놓고 몰아쳐도 치는 게 순서다.

 기업들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구조조정이 안 되고 있는 근본 이유는 기업 스스로에 있다. 정부·채권단 지원에 매달려 부실을 눈덩이처럼 키운 게 누군가. 무작정 업황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리는 ‘천수답 경영’으로 위기를 자초한 것 아닌가. 그런 만큼 마냥 업계 자율만 믿고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리 경제에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자율 구조조정이 안 돼 공적자금 투입과 대규모 실직으로 이어지는 사태는 정부가 개입해서라도 막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