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많을수록 국회의원 당선율 높아 … 최대 16배 격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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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호 4 면

#“아니 표로 보면 8000만원(이하 소득자)까지 (세 부담이) 43만원 늘어나잖아요.”(박원석 정의당 의원) “(43만원이면) 얼마 안 늘어나는 거예요.”(이만우 새누리당 의원)”


올해 초 ‘연말정산 대란’을 불러온 2013년도 세법개정안 통과 당시 국회 조세소위 회의 장면이다. 당시 여야 의원들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할 경우 중산층의 세금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실생활에서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지를 가늠하지 못한 채 별다른 손질을 하지 않았다. 본회의 투표에 참여한 의원 286명 가운데 반대표는 6명에 불과했다. 결국 일반 국민의 눈높이를 외면한 개정 법안 때문에 세금폭탄을 맞은 직장인들의 저항이 거세지면서 급기야 세법을 다시 고쳐 세금을 돌려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 정치에서 대의민주주의가 한계에 직면했다는 위기론이 나오고 있다. 국민을 대표해 선출되는 국회의원이 민의(民意)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 국회의원이 생활 수준 등에서 국민과 눈높이가 다르다 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국회의원과 국민 사이의 실제 경제적 격차는 어느 정도 나는 것일까. 중앙SUNDAY는 현직 국회의원 297명 중 올 3월 재산공개대상(보궐선거 당선자 등 제외)인 288명의 재산 내역(부양가족 포함)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 기준으로 국회의원의 평균 재산은 28억7494만원으로 확인됐다. 이는 가구당 국민 순자산 평균인 2억7370만원(2014년 기준)의 10배가 넘는 수준이다. 전체 분석대상을 자산 순서대로 줄을 세웠을 때 정확히 중간에 있는 대상인 중위 값(median)에서도 국회의원은 11억2988만원으로 국민(1억5453만원)과 뚜렷한 격차를 보였다. 국회의원들의 부의 수준이 일반 국민보다 7배 정도 높다는 뜻이다. 부동산과 금융자산별로 나눴을 때 국회의원은 가구당 평균보다 각각 6.5배, 18배가량 많은 자산을 소유했다.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이 1443억4388만원으로 의원 중 가장 많은 재산을 기록했다. 그동안 압도적인 재산 1위를 유지했던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5월 의원직을 사퇴해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전체 의원 중 가장 평균에 가까운 재산을 보유한 의원은 검사 출신인 김제식(충남 서산-태안) 새누리당 의원으로 총 28억6564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의원 간 빈익빈 부익부 뚜렷더욱 면밀한 분석을 위해 통계청에 의뢰해 국회의원의 자산을 대상으로 불평등 정도를 상징하는 지니계수를 산출했다. 지니계수는 0에서 1까지의 수치로 나타내며 1에 가까울수록 분석 대상 간 불평등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석 결과 국회의원의 자산 지니계수는 0.658로 나타났다. 우리 국민의 지난해 자산 지니계수(0.601)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그만큼 의원들 간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심하다는 것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지니계수가 높다는 건 전체 자산에서 최상위층(5%)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라며 “수십억원대 이상의 초고액 자산을 가진 국회의원이 많은 게 지니계수가 올라간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체 국민 중 가구 순자산 분석에서 가장 높은 구간인 10억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가구의 비중이 4.1%에 그친 데 반해, 국회의원들은 전체 의원의 절반을 넘는 160명(56%)이 10억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했다.


여야 의원들 간에도 ‘여부야빈(與富野貧)’으로 대변되는 경제적 불균형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고액 자산가가 많은 새누리당 의원들의 지니계수(0.666)가 새정치민주연합(0.597)보다 높아 불평등 수준이 더 심했다. 실제로 50억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국회의원 25명 중 새누리당 소속 의원이 22명(88%)일 정도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야당에선 안철수 의원(787억원)과 장병완 의원(79억원)만이 고액 자산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보유 자산별로도 여야는 이른바 ‘여땅야금’으로 불릴 정도로 확연한 차이를 드러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건물과 토지 등 부동산 자산이 많았지만 새정치연합은 주식과 예금 같은 금융자산의 비중이 컸다.

‘與富野貧’ ‘多多益當’…국회 입성 큰 변수국회의원과 일반 국민 간에 경제적인 격차가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재력’이 국회 입성의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차떼기’로 대변돼 온 금권정치의 폐해는 많이 사라졌다곤 하지만 아직도 머니 폴리틱스(Money Politics?돈의 정치)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변수라는 것이다. ‘다다익당(多多益當·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당선에 유리하다)’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렇다면 실제 선거판에서 부(富)는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김석우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가 2010년 12월 한국의회발전연구회에서 발표한 ‘국회의원의 정치적 충원과 한국 국회 발전’ 논문에 따르면, 2008년 4월 18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30억원 이상의 재산 보유 후보자 90명 중 54명이 당선돼 당선율은 60%에 이르렀다. 반면 5000만원 미만 재산 보유 후보자는 모두 100명에 달했지만, 이 중에 단 한 명도 당선되지 못했다. 이를 17대 총선 때와 비교해보면 5000만원 미만 재산 보유 후보 중 당선자는 7명에서 0명으로 급감했지만, 30억원 이상의 재산 보유 후보 중 당선자는 22명에서 54명으로 늘었다.


중앙SUNDAY가 같은 기준을 적용해 2012년 19대 총선에 출마한 후보자 902명을 재산 규모별로 나눠 당선율을 분석해본 결과도 비슷했다. 30억원 이상의 재산 보유 후보자 94명 중에선 절반에 가까운 44명(46.8%)이 당선된 반면, 재산이 없다고 신고한 후보자 36명 중에선 새누리당 김한표 의원 1명(2.8%)만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재산이 많을수록 최대 16배까지 당선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김석우 교수는 이에 대해 “재산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이 당선된다는 것은 한국 선거가 여전히 고비용 구조로 돼 있다는 단면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부자들이 정치를 독점할수록 정치가 서민들의 관심과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개연성이 커지기 때문에 재산이 더 이상 정치 시장에서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정치 개혁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재산이 수도권보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더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비수도권에서 30억원 이상 재산을 가진 후보자의 당선율이 55.3%에 달해 절반이 넘는 후보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지만, 수도권에선 당선율이 38.3%에 그쳤다. 이를 두고 과거에 비해 돈 안 드는 선거 풍토가 어느 정도 정착되면서 그 효과가 수도권부터 발생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지차금, 돈줄 풀어주되 투명성 높여야민주주의의 젖줄로 불리는 정치자금에 대한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 이후 유지돼 온 이른바 ‘오세훈법 체제’가 고비용 정치 구조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지만, 과도한 규제로 인해 오히려 정치 참여 통로를 막는 부작용이 생겼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총선에서 후보자가 쓸 수 있는 선거비용은 최대 2억원 수준이지만, 이 정도만 쓰고도 당선될 것이라고 믿는 정치인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당내 경선에 본선까지 연이어 치르려면 법정 선거비용의 몇 배가 필요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여기에 내년 총선을 앞두고 경선 과정에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도입할 경우, 예비 후보자들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는 “안심번호 방식의 여론조사를 통해 공천을 하게 될 경우 후보당 최소 5000만원 이상의 경선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행 정치자금 규제는 현역 의원과 정치 신인 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1년에 1억5000만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최대 3억원의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현직 의원들과 달리 정치 신인들은 선거 120일 전 예비 후보자 등록 때까지는 정치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후원회조차 만들 수 없어 더욱 불리하다는 것이다.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신인 정치인은 “현행법상 고소득 전문직이거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직업인으로서 정치 활동을 하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가난한 정치인이라도 최소한의 자긍심과 도덕적 양심을 지킬 수 있도록 정치자금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토로했다.


돈줄은 풀어주되 지출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당 후원회의 폐지는 경쟁력 있는 신인들을 발굴하고 지원할 수 있는 통로를 막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현실적으로 필요한 정치자금의 공급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성학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선거 조직 운영에 자금이 많이 사용되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엔 후보 선출 과정과 홍보에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며 “정치자금 규제를 풀고 현실화하는 대신 투명성을 높이고 불법 행동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적 대표성을 보완하기 위해 비례대표제 등을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김석우 교수는 “국회의원 선거를 통한 정치적 충원 과정에서 경제적 대표성을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선거 제도를 도입해 재산 변수의 영향력을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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