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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야구, 그게 두산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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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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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감독(왼쪽)은 부상 투혼을 발휘하며 한국시리즈 MVP가 된 정수빈이 기특하기만 하다.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인터뷰 자리에 함께 한 정수빈은 “(김 감독님은) 감독을 하기 위해 태어나신 분”이라고 말했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선수들의 투지를 이끌어내 14년만의 우승을 이끌었다. [조문규 기자]

챔피언이 된 다음날 느낌은 어떨까. 두산 베어스의 2015 한국시리즈(KS) 우승을 이끈 김태형(48) 감독에게 물었다. 그는 “축승회에서 술을 많이 마시고 늦게 잤다. 평소 아침을 안 먹고 늦잠을 자는 편인데 우승 다음날(지난 1일) 아침 7시가 되기 전에 눈이 떠지더라. ‘이게 무슨 기분이지?’라는 생각에 뒤척였다”며 “희한하게 다른 코치들도 일찍 깼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두산 김태형 감독 인터뷰
시즌 초반 주전 선수 잇달아 부상
솔직히 진짜 목표는 4강 진출

 3일 본사를 방문한 김 감독은 “팀을 맡아 첫 해 우승을 해서 얼떨떨하다. 주변에서 축하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는데 이런 말을 들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우승해서 좋기도 하고, 오는 6일 출발하는 가을캠프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쁘기도 하다”고 말했다. “KS 우승까지 하는 바람에 내년에 대한 부담이 더 크겠다”고 물었더니 그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부담은 무슨…. 올해 했던 것처럼 두산 베어스다운 야구를 하면 된다. 선수들에게 내년에도 최선을 다하라고 주문하겠다. 성적이 부진하면 감독이 책임지면 된다.”

  -시즌에 앞서 우승에 도전한다고 했다. 솔직히 진짜 목표는 뭐였나.

 “4강 진출이었다. 우승까지 기대하진 못했다. 시즌을 앞두고는 걱정이 많았다. 스프링캠프 때 노경은이 타구에 맞아 턱관절을 다쳤다. 시범경기에서 이현승이 왼손 약지 부상을 입었다. 노경은이 돌아오자 5월엔 김강률이 왼 발목 아킬레스건을 다쳐 수술을 받았다. 마운드 공백이 커서 4강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에이스 니퍼트도 부상이 겹쳐 부진했다.

 “시즌 초 부상 선수들이 계속 나올 때 ‘내리막이겠구나’ 싶었다.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은 채 패하면 초보 감독인 내 잘못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대체 선수들이 정말 잘해줬다. 진야곱이 선발 로테이션을 잘 지켜줬고, 이현호도 기대 이상으로 던졌다. 애초 ‘계산’에도 없었던 허준혁도 선발 빈 자리를 메웠다.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고, 나중에 베테랑들이 돌아오자 시즌 막판 두산은 꽤 강해져 있었다. 선수들 스스로 자신감을 많이 가졌을 거다.”

 -취임 일성으로 ‘포기하지 않는 야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 사실 감독 입장에선 버릴 경기를 버려야 한다. 큰 점수차로 뒤지면 주전선수들의 체력 안배를 위해쉬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은 절대 경기를 버려서는 안 된다.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그게 두산다운 야구라고 믿는다.”

 -두산 선수들이 ‘하나로 뭉쳐서 우승했다’고 말하더라.

 “팀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내가 구체적으로 지시한 건 없다. 딱 두 가지만 말했다.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해라’. ‘개인 감정으로 야구 하지 마라’고. 삼진 한 번 먹었다고 인상 쓰면 팀 분위기가 나빠진다. 작은 플레이도 악착같이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KS에서 끈질긴 야구를 한 것 같다.

 “두산은 꾸준히 가을야구를 하는 팀인데 지난해 6위에 그친 탓에 선수들 자존심이 많이 상한 것 같더라. 선수들의 오기가 느껴져서 그걸 결집할 수 있도록 지켜봤다. 난 특별히 한 건 없다. 나중엔 선수들이 강해진 게 느껴졌다. 많이 훈련하고 공부한 덕분이다. 그렇게 선수들 각자의 능력이 커졌고, 두산이 강해졌다.”

 -‘운이 좋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시즌 초 팀이 안정되지 않았을 때 하위권으로 떨어졌다면 치고 올라올 힘이 부족했을 거다. 그런데 우리에겐 악착같이 버티는 힘이 있었다. 하루 아쉽게 져도 다음날 멋지게 이겼다. 선수들이 잘해줬고, 내가 운이 좋은 거다.”

 -니퍼트는 부상이 잦았는데도 기다렸다.

 “니퍼트의 공백(정규시즌 20경기 등판, 6승 5패)이 컸지만 포스트시즌 때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팀에서 5년째 뛴 니퍼트는 자기 역할을 잘 안다. 믿고 기다렸다. 반면 앤서니 스와잭은 팀을 위해 던지겠다는 생각이 없더라. 그래서 KS 명단에서 뺐다.”

 -초보 감독이지만 선수 기용에서 자신감이 느껴진다. 기준은 뭔가.

 “베테랑들은 기록을 참고해 출전 여부를 정한다. 젊은 선수들은 기세를 본다. 지지 않겠다는 (삼진 당하지 않으려는)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꼭 이기겠다는 기세를 보여주는 선수를 믿고 쓴다.”

 -입담이 좋은 데도 말을 아끼는 편이다.

 “이제 감독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할 말이 별로 없다. 적어도 500경기를 치러야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다고 본다. 우승을 했다고 해서 ‘이렇게 준비했다’, ‘이걸 잘했다’고 말하는 건 건방진 것이다. 선배 감독들은 그런 걸 준비 안 했겠나.”

 - 그런데 포스트시즌 기자회견 때는 매서운 ‘말펀치’를 날렸다.

 “상대를 자극하려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염경엽 넥센 감독이 ‘내가 형 스타일을 아니까 참는다’고 하더라. 난 그냥 농담하듯 여유있게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선수들 앞에서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으니까.”

 플레이오프 기자회견에서 김 감독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많은 공을 던진 넥센 조상우에게 “감독이 시키니까 열심히 하는 거 같은데 그렇게 (많이) 던지면 큰일난다”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그의 말은 넥센의 불펜 운용을 흔들었다. KS 기자회견에서는 류중일 삼성 감독이 “김 감독이 골프를 잘 친다던데 야구인 골프대회에서 실력을 겨뤄보고 싶다”고 말했다. 삼성이 우승해서 골프대회에 초청하겠다는 뉘앙스였다. 이에 김 감독은 “야구는 이기고, 골프는 져 드리겠다”고 되받았다.

 -KS 서 양의지·정수빈의 부상 투혼이 빛났다.

 “양의지가 플레이오프 2차전 4회 오른 발가락을 맞았다. 다음 타석에서 발을 못 움직이길래 교체했다. 더 이상 못 뛸 줄 알았다. 실금이 갔다는데 진통제 먹고 뛰겠다고 하더라. 나도 믿기 힘들었다. 정수빈도 KS 1차전 때 왼 검지에 공을 맞아 6바늘을 꿰맸다. 역시 어렵다고 봤는데 하루 쉬고 방망이를 치더라. 두산은 그런 팀이다.”

 -아픈 손으로 정수빈이 5차전 때 7회 3점홈런을 쳤다. 정말 기특했겠다.

 “아니다. 그럴 틈이 없었다. 홈런이 나오자 ‘아, 이겼구나’ 싶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저 녀석 아픈 손으로 대단하네’라고 생각했다. 허허.”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는 김현수를 잡아달라고 했다던데.

 “김승영 사장님께 ‘김현수는 두산에서 큰 선수니까 필요합니다’라고만 했다. 그 이후는 내 손을 떠난 문제다. 지난 겨울엔 ‘장원준이 (롯데를 떠나) 시장에 나왔습니다’라고만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안 그래도 장원준 선수가 우리 팀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장원준을 영입해줘서 정말 감사했다”

 -홍성흔(38)을 제외하면 두산 선수들은 우승을 처음 경험했다. 두산의 미래는 어떻다고 보나.

 “우리 젊은 선수들이 참 좋다. 이 선수들이 앞으로 몇년은 잘할 거고, 새롭게 등장할 얼굴도 있다. 올해는 우리 불펜진이 약해서 번트 등 작전을 걸지 않고 강공을 주문했다. 그렇게 자꾸 치니까 야수들이 많이 성장했다. 나와 호흡도 맞춰봤고, 힘도 붙었으니 이젠 더 정교해질 차례다. 내년에는 공격적인 야구에 아기자기한 야구도 가미하고 싶다.”

글=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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