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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만 먹으면 살 안 찐다고? 천만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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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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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릭스 허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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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와튼 경영대학원은 수퍼마켓 고객 1000명의 동선을 추적했다. 분명한 패턴이 나타났다. 건강식 채소로 알려진 케일을 집어 카트에 넣은 사람은 그 뒤 아이스크림과 맥주를 살 가능성이 높았다. 몸에 좋다는 ‘착한’ 먹거리를 살수록 ‘나쁜’ 먹거리의 유혹은 더욱 강해진 것이다.

 절제와 향락의 균형을 맞추는 인간의 이 같은 본성은 예견된 것이다. 죽어라고 운동한 뒤 케이크 한 조각 더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이런 ‘면죄부 효과’는 준 만큼 돌려받으려는 인간 본능에 따른 것이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을 때조차 이런 심리는 작동한다. 문제는 검증이 안 된 이른바 ‘건강 증진 식품’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이런 효과는 그야말로 우리의 잘못된 선택에 면죄부를 줄 우려가 커진다는 점이다.

 면죄부 효과는 우즈마 칸 카네기멜런대 교수와 라비 다르 예일대 교수가 발견했다. 이들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착하면서 나쁜지, 건강하면서 아픈지,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인지 잘 안다. 따라서 어떤 결정이 자아와 너무 멀리 떨어진 한쪽으로 기울면 자동적으로 반대 방향 행동을 해 균형을 잡는다. 베이컨 치즈버거를 주문한 뒤 샐러드를 추가하는 행동이 대표적이다. 이는 쾌락과 건강 사이에서 합리적으로 균형을 취하려는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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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학자들은 메뉴판에서 건강식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 좋은 음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짐을 발견했다. 메뉴판에서 샐러드 사진을 본 고객은 프렌치 프라이를 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패스트푸드 체인점들은 이런 고객들의 심리를 이용해 이미 큰돈을 벌어 왔다.

 특히 자제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메뉴판 효과’에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유혹에 저항하는 능력이 강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지금은 원하는 걸 선택하고, 다음번에 참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체중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햄버거를 보여주고 칼로리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묻자 평균적인 답변은 734㎉로 나타났다. 그러나 햄버거를 셀러리 3조각과 함께 보여주자 이들이 짐작한 칼로리 수치는 619로 줄어들었다. 이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비교한 뒤 속된 말로 ‘퉁쳐’ 계산하려는 뇌의 본능을 보여준다.

 운동을 하지 않고도 운동한 효과를 내주는 약을 개발했다는 제약회사의 선전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꾸준히 하는 운동의 효과를 대신 내주는 약은 없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의도하든 아니든 그런 거짓말을 원한다.

 대만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절반에게 “지금 드신 약은 위약”이라고 말했다(실제로 위약이었다). 남은 절반의 참가자에겐 “지금 드신 약은 멀티비타민”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 결과 비타민을 먹었다고 생각한 참가자들은 식사 때마다 일관되게 몸에 나쁜 음식을 선택했다. 거리가 길고 짧은 2개의 길 가운데 하나를 택하게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타민을 먹었다고 생각한 이들은 짧은 길을 선택했다.

  다이어트 보조제를 먹었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음식을 먹었다.

 질병이나 장애, 죽음은 우연적 요소에 영향을 받거나 너무 먼 미래의 일이라 인과관계를 밝혀내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취약해지며, 건강과 관련된 우리의 결정 중 명확한 것은 거의 없기 십상이다. 결국 우리는 불확실한 건강상의 이점과 달콤한 보상 간의 이해득실을 자의적으로 측정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힘들기 그지없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답은 건강이란 ‘목표’보다 그저 하루하루 건강히 살겠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다이어트 중인 126명의 몸 상태를 추적해 봤다. 체중 감량에만 집중한 참가자들은 1주일 뒤 체중 감소량이 줄거나, 체중이 오히려 증가했다. 그러나 잘못된 식습관을 바로잡는 데 집중한 참가자들에게선 이런 현상이 덜 발견됐다.

 또 하나의 답은 ‘다음 기회’를 생각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만 집중해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비디오를 1회 무료로 볼 수 있게 된 대학생들 가운데 절반은 ‘덤 앤 더머’ 같은 단순한 오락영화 대신 ‘쉰들러 리스트’ 같은 진지한 영화를 선택했다. 그러나 무료로 비디오를 볼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진 대학생들은 80%가 단순한 오락 영화를 선택했다.

 건강하게 사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정기적으로 운동하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충분히 자면 된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규칙은 지키기 불편하고 시간을 잡아먹는다. 그래서 몸에 좋다는 주스를 마시거나 최신 운동기구를 구입해 조금이라도 편하게 건강을 지켜보려 한다.

 이런 면죄부 효과의 유혹을 물리치는 방법은 단 하나다. 건강에 관한 결정을 내릴 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기업들의 상업적 메시지엔 귀를 닫아라. 이들은 “우리 제품을 구입하면 건강에 도움되고, 밑져봤자 본전”이라고 외친다. 이는 환상에 불과하다.

앨릭스 허친슨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