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살 배우도 혼나요 … 우리 꿈은 경로당 극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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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호 6 면

스무 살을 맞은 대학로 대표 극단 ‘차이무’가 잔치를 벌인다. 이상우 예술감독의 신작 ‘꼬리솜 이야기’(11월 6일~29일)를 필두로 민복기 대표의 신작 ‘원파인데이’(12월 4일~2016년 1월 3일), 차이무의 대표작 ‘양덕원 이야기’(1월 8일~31일)까지 내리 세 작품을 대학로 예술마당에서 릴레이로 올리는 것. 지난달 2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릴레이 3작품에 출연하는 ‘차이무 군단’ 20여 명이 총출동했다.


차이무는 1995년 연출가 이상우를 중심으로 문성근·송강호·류태호 등이 뭉쳐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아돌 후가드의 ‘플레이랜드’를 올리며 창단했다. “제가 연우무대를 나와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를 할 땐데, 송강호·유오성 등 당시 밥먹을 돈 없던 사람들이 늘 제 사무실에 버티고 앉아 있었어요. 도저히 안되겠다, 이 사람들 무대에 서게 해야겠다 싶어서 문성근과 제가 1000만원씩 내서 연극을 올렸어요. 결국 1000만원 적자를 봤죠.”(이상우)


지난 20년간 차이무는 수많은 명배우를 배출하며 대학로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굳혔다. 강신일·이성민·박원상·최덕문·이희준·전혜진·박해준 등 잘나가는 배우들이 이곳을 단지 거쳐간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한발 걸치고 있는 것은 차이무만의 동호회식 ‘헤쳐모여’ 시스템 덕이다. 폐쇄적인 단원제나 오디션을 통해 작품마다 배우를 뽑는 시스템도 아니다. ‘자기만 차이무라는 사람도 있고 자기는 아니라는데 우리만 차이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는 민복기 대표의 말처럼 다소 애매한 ‘연대감’이 차이무의 울타리를 이룬다.


‘꼬리솜 이야기’로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이성민은 “20년 됐지만 여전히 할말 많은 사람들이다. 밤새 술마셔도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나이 오십에 여전히 선생님한테 야단 맞는 게 젊음의 비결”이라고 했다. 민복기 연출은 “배우들이 평균 40대가 넘는다. 내 꿈은 경로당 극장을 만들어 나이들어서도 경로당에 모이듯 지금처럼 쭉 재밌게 작업하는 것”이라고 했다.


탄탄한 배우진 못지않은 차이무의 장수비결은 따뜻한 시선과 독특한 웃음코드로 세상의 어둠을 비추는 작품세계에 있다. 거의 모든 레퍼토리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비판의식을 놓지 않으면서도 친근한 유머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연극하면서 자부심이라면 번역극이 성행하던 시절 우리의 삶을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다는 거에요. 우리 것을 고민하다보니 자연스런 연기를 하게됐고 어쩌면 지금 영화·드라마 연기의 바탕이 거기서 시작된 것 같아요. 그게 차이무만의 색깔인 거죠.”(강신일)


20주년 공연 역시 차이무의 정신을 이어간다. 포문을 여는 ‘꼬리솜 이야기’는 고려시대 삼별초 난 때 가상의 섬에 건너가 700년간 살아온 사람들이 외세에 의해 남과 북으로 분리되는 이야기. 이상우 연출은 “우리 현실과 비슷하기도 하고 안 비슷하기도 한 묘한 이야기다. 형식이 좀 이상한데 연습하다보니 재미가 있다”고 했다.


그는 20주년을 맞은 소회에 대해 “극단이 영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중요한 건 극단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좋은 작가와 배우가 나올 바탕이 되는가 라는 것이다. “얼마전 히틀러의 최후에 관한 다큐를 봤어요. 1944년 4월 베를린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회 장면이었죠. 나치 고위관리들이 바그너 음악을 감상 중인데 지휘자가 젊은 폰 카라얀이더군요. 예술이란 게 이런거구나 싶어 무서웠죠. 예술은 권력에 봉사할 수도, 아닐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예술 자체보다 태도가 더 중요하겠죠. 이 시대에 연극을 왜 하는지는 알고 해야 됩니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사진 극단 차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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