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완전한 사랑을 믿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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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당신은 완전한 사랑을 믿습니까
‘더 랍스터’가 던지는 질문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데이비드(콜린 파렐)는 어느 호텔로 보내진다. 이 호텔에서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해 쫓겨난다. 이 호텔과, 이곳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짝을 이루지 않은 채 게릴라처럼 살아가는 숲이 영화 ‘더 랍스터’(원제 The Lobster, 10월 29일 개봉,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배경이다. 짝을 찾아야만 하는 호텔과 짝을 이뤄서는 안 되는 숲, 두 세계를 모두 거치는 데이비드는 번번이 탈출을 꿈꾼다. 반대되는 두 세계의 기묘한 질서와 강렬한 우화 같은 데이비드의 모험을 통해 ‘더 랍스터’는 사랑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상징으로 가득한 영화 ‘송곳니’(2009)와 ‘더 랍스터’로 그리스의 새로운 거장 감독으로 떠오른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역시 이렇게 말한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대해 관객 각자 자신만의 방식대로 고민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 질문을 더듬어 본다.

Q1 짝을 이루는 것과 혼자 살아가는 것, 인간이 완전해지는 길은 무엇인가

‘더 랍스터’가 그리는 세상은 그 시대와 지역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세상은 제도적으로 모든 사람이 짝을 이뤄야 한다고 규정한다. 사별이나 이혼으로 혼자가 되면 곧바로 그 호텔에 들어가 짝을 찾아야 한다. 그곳에서 완전한 짝을 이뤘다는 사실을 인정받아야 도시로 돌아가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호텔에서는 ‘혼자면 위험하고 불행하며, 짝을 이루면 안전하고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상황극을 매일같이 투숙객들에게 보여준다. 매일 아침, 등에 난 상처에 직접 호랑이 연고를 바를 때마다 상처에 손이 닿지 않아 낑낑대는 데이비드 역시 누군가와 함께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호텔, 나아가 영화 속 세상에서 짝을 이루는 것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필요와 감정이 아니라, 강제와 생존의 문제다.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더 이상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다. 데이비드와 같은 날 호텔에 들어온 절름발이 남자(벤 위쇼)는 코피 흘리는 여자(제시카 바든)와 짝이 되기 위해 자신도 일부러 코피를 낸다. 그가 데이비드에게 묻는다. “숲에서 굶어 죽거나, 동물이 돼서 다른 동물에게 먹히거나, 매번 코피를 내는 것 중 어떤 게 최악일까?” 데이비드가 답한다. “동물로 변했는데 다른 동물에게 먹히는 거지.” 데이비드 역시 랍스터가 되고 싶지는 않다.

위기의 순간, 데이비드는 숲으로 도망친다. 그곳에는 데이비드처럼 호텔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숨어 산다. 그들의 대장(레아 세이두)은 데이비드를 환영하며 말한다. “우리와 함께 있어도 돼. 하지만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거나 섹스를 해서는 안 돼.” 숲에 사는 사람들은 어딘가에 각자의 무덤을 파둔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숲 속의 대장은 호텔의 연인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희 둘 중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야?”

누군가와 함께해야 안락하다는 호텔 운영진의 주장도, 사람은 결국 혼자라는 숲 속 대장의 이야기도 모두 틀린 건 아니다. 그건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누군가와 짝을 이룸으로써 그 외로움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외로움을 완벽히 증발시키지는 못한다. 그 어떤 살뜰한 연인도 그들 각자에게 찾아오는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인간에게는 짝을 이루는 것도, 혼자되는 것도 완전한 해결책이 아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인간은 불완전하다.

Q2 인간의 감정을 강요할 수 있을까

호텔은 엄격한 규칙과 통제에 의해 운영된다. 투숙객들의 모든 사항을 규격화하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한다. 모든 규칙은 혼자되는 것보다 짝을 이루는 게 더 좋다는 점을 강조한다. 투숙객들은 똑같은 옷을 입고 정해진 일정에 맞춰 움직인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성적 성향을 양성애자라 기록하고 싶지만, 호텔에서는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중 하나를 고르라 말한다. 혼자인 사람이 동물로 변하기 전까지 시간을 버는 방법은 딱 하나다. 사냥 시간에 숲에서 사는 ‘나홀로족’을 마취총으로 쏴 맞추면, 잡은 사람 수만큼 호텔 체류 기일을 연장해준다. 모든 구성원이 짝을 이뤄야 하는 사회에서 영원히 혼자 살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은 적(敵)인 셈이다. 이 규칙을 제일 잘 활용하는 사람이 바로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안젤리키 파푸리아)다. 그는 투숙객들 중 누구와도 감정을 나누려 들지 않는다. 대신 눈부신 사냥 솜씨로 호텔에서 혼자 지낼 수 있는 시간을 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억지로 꾸미느니, 이 여자에 맞춰 매정한 척하는 게 훨씬 쉽겠다고 생각한 데이비드가 그와 연인이 되려 했다가 큰 봉변을 당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호텔 투숙객 중에는 진짜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다. 모두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 벌칙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눈속임을 할 뿐이다.

그 강요의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데이비드는 숲으로 도망친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나홀로족도 그들만의 규칙을 내세운다. 그들은 호텔과 정반대로 사랑과 섹스를 금한다. 키스를 나누다 걸리면 두 사람의 입술을 벤다. 이곳에서도 데이비드는 엄격한 규칙에 따라 혼자 되기를 강요받는다. 그 속에서 데이비드는 ‘근시 여자’(레이첼 와이즈)와 사랑에 빠진다. 적발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 사랑은 점점 더 애틋해진다. 강요와 규칙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더욱이 감정은 규칙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Q3 꼭 공통점을 찾아야 사랑할 수 있을까

절름발이와 코피 흘리는 여자가 연인이 됐음을 선언하는 자리에서 호텔 매니저(올리비아 콜먼)는 이렇게 말한다. “두 사람은 이틀 전에 만났지만 천생연분입니다. 코피를 자주 흘리는 것까지 완벽하게 닮았거든요.” 데이비드 역시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와 짝이 되기 위해 그처럼 매정한 척한다. 확실히 누군가와 가까워지려면, 아니 가까운 척이라도 하려면 그와의 공통점을 내세워야 한다. 숲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근시 여자에게 끌린 데이비드는 그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근시라는 사실을 알고 그와 더욱 가까워진다. 데이비드에게 두 사람이 근시란 사실은 둘이 짝으로 맺어질 운명이었다는 암시와도 같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끼리 어딘가 닮고 무언가를 공유해야 한다는 것 또한 하나의 강요로 되돌아온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의미심장한 건 그래서다. 데이비드는 근시 여자와 또 하나의 공통점을 만들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려 한다. 카메라는 데이비드가 그 행동을 하기 직전, 고개를 돌려 혼자 데이비드를 기다리고 있는 근시 여자의 모습을 비춘다. 여기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다음 상황은 두 가지다. 데이비드가 그 행동을 실천에 옮긴 뒤 여자 곁으로 오는 것이 첫 번째고, 데이비드가 그 행동을 하지 못하고 여자를 혼자 두고 도망치는 것이 두 번째다. 무엇을 상상하느냐에 따라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아름다운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으로 남을 수도 있고, 완전한 사랑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쓸쓸한 풍경이 될 수도 있다. 그중 어떤 의미를 붙잡느냐는, 란티모스 감독의 말대로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묻는다. 당신은 완전한 사랑을 믿습니까?

글=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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