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자본금 1달러 홍콩 유령회사 통해 2400억원 해외 빼돌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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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 세관이 2400억원대의 국외 재산도피 의혹에 대해 수사에 나섰다. 특히 해운업체와 운수업체 등 10여 곳이 연루된 정황이 포착됨에 따라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29일 검찰과 세관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전성원)와 서울세관은 서울 중구에 있는 선박유류 중개업체인 W사가 홍콩에 세운 지사에 국내 업체 10여 곳이 의심 자금을 송금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지난 28일 W사 사무실과 해당 업체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해 회계장부와 각종 거래 자료들을 확보했다.

 조사결과 W사는 홍콩에서 자본금 1달러로 W사의 이름을 본뜬 지사를 설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사를 페이퍼 컴퍼니로 의심한 검찰과 세관은 W사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W사가 2011년부터 1년간 40억여원을 해당 지사에 송금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추가로 계좌추적에서 W사뿐 아니라 국내 해운업체와 도매업체 등도 이곳에 자금을 송금한 사실을 파악했다. H해운은 4000만 달러(약 457억원), 운수업을 하는 T사와 J사는 각각 3000만 달러(342억원), 2500만 달러(286억원), 선박유류 도매업체인 K사는 1000만 달러(114억원)를 송금하는 등 총 2억1000만여 달러(2400억원)가 W사 홍콩 지사로 보내진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과 세관은 이들 업체가 W사 홍콩 지사에 송금할 뚜렷한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다. W사의 해외 페이퍼 컴퍼니를 창구로 삼아 국외로 재산을 도피시킨 것으로 의심하는 것이다. 많아야 연 매출 1000여억원대인 이들 업체가 최대 수백억원의 자금을 보낸 것으로 볼 때 공식 회계에 잡히지 않는 별도 자금을 관리해 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W사는 자금이 송금된 홍콩 지사 외에도 유사한 이름의 회사를 홍콩에 설립했다가 폐업하는 과정을 반복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벌이고 있는 서울세관은 조만간 W사의 한모(45) 대표를 비롯해 관련 업체 대표들을 소환해 송금 경위와 자금의 성격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서울세관 관계자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관련자 조사 등을 진행해봐야 국외 재산도피인지 여부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외 재산도피 의혹은 탈세와 횡령 혐의로도 연결될 수 있는 만큼 수사가 추가 혐의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 업체의 국외 재산도피 혐의가 확인되면 최근 수년간 적발된 재산도피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본지는 W사에 전화를 걸어 해명을 들으려 했으나 대표와 연결이 이뤄지지 않았다.

앞서 검찰은 세관과 공조해 수사를 벌여 모뉴엘 박홍석(53) 대표를 3조4000억원의 사기 대출과 360억원의 국외 재산도피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박 대표는 1심에서 징역 23년과 벌금 1억원, 추징금 361억원을 선고받았다. 

서복현·이유정 기자 sphjtb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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