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 2035

우울한 건 우리가 나약해서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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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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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
JTBC 국제부 기자

얼마 전 친구의 추천으로 정말 유쾌한 웹툰 하나를 알게 됐다. 2년째 연재 중인데 뒤늦게 빠져 출퇴근길 유일한 낙이 됐다. 작가 자신을 너구리로, 주위 사람들을 귀여운 동물로 희화화해 공감 가는 이야기를 잘 풀어 내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지난달 “연재를 당분간 쉬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글이 올라왔다. 병원을 향해 걸어가는 너구리 그림에 “우울증이라는 게 완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이겨 내는 중입니다”고 말풍선을 달아놓은 게 아닌가. 작가는 만화가 인기를 얻으며 쏟아지는 관심이 낯설었고 “내가 뭐라고 갑자기 잘해 주나” 싶어 더 구멍으로 숨어들게 됐다고 연재 중단의 변을 써 놓았다.

 독자로서는 아쉬웠지만 응원하고 싶었다. 나 또한 지난해 정신과를 찾아간 일이 있어서다. 세월호가 침몰한 4월 16일 오후 팽목항에 서 있던 나도 쓸모없는 ‘기레기’가 아니었을까 한동안 자책감에 빠졌다. 두 달 동안 쉬는 날 없이 일하다 보니 몸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기자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때마침 취재 트라우마를 겪는 기자들에게 진료 지원을 한다기에 냉큼 병원을 찾았다. “우리 의사들도 그렇지만 기자나 검사나 남의 불행을 먹고사는 직업이 참 힘들죠.” 그 한마디에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지며 눈물이 툭 떨어졌다. 한 번 병원에 다녀와 보니 이제는 마음에 먹구름이 낄 때면 ‘우울증이 오려나 보다’ 하고 알아서 기분 전환 거리를 찾는다. 으슬으슬 몸이 떨리고 재채기가 날 때 따뜻한 유자차를 마시고 숙면을 취하는 것처럼 말이다.

 몇 달 전 아기를 낳은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육아휴직 중이라 회사 안 가니 좋으냐 했더니 아기랑 둘만 지내다 우울증에 걸렸단다. 병원에 가 보니 약 처방이 필요한 정도의 우울증인데, 모유 수유를 포기하지 못해 약도 못 먹고 버티고 있다는 친구의 말에 나까지 속상했다. 남자들과 똑같이 공부하고 일하다 어느 날 덜컥 집에 틀어박혀 밤낮으로 아기 돌보기만 하라는데 우울한 게 당연하다 싶었다. 그래도 담담하게 친구의 말을 들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일 뿐이라는데 유별난 일처럼 대하는 게 더 실례인 것 같았다.

 얼마 전 질병관리본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의 6.6%가 우울증을 앓았는데, 상담이나 치료를 받은 사람은 그중 18.2%에 불과했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한국 사람들은 우울증 때문에 두통이나 소화불량, 관절통 등 몸의 이상 증세까지 나타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잠도, 컬러링북도 소용이 없고 마음의 감기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면 지체 말고 전문가를 찾아가자. 우울증은 결코 우리가 나약해서 걸리는 것이 아니다.

이 현 JTBC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