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초고층 아파트 왜 인기 있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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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주변 초고층 아파트촌. 사진 왼쪽이 동백섬이고 오른쪽에 우뚝 솟은 3개 동짜리 초고층 아파트가 80층 높이의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다. 국내 최고층으로 건립되는 엘시티 더샵(85층)은 해수욕장 오른쪽 가장자리에 들어선다. [사진 포스코건설]


Q
얼마 전 부산에서 초고층 아파트가 분양됐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청약 경쟁률이 최고 수십대 1을 기록했다고 들었는데요. 신문을 보시던 할머니는 “30층만 넘어도 아찔한데 70~80층에서 겁나서 어떻게 살지”라고 말씀하시던데, 제 생각도 비슷하거든요. 초고층 아파트가 왜 이렇게 인기 있나요.

조망 좋고 고급 이미지 … 초고층 1·2·3위 해운대에 있죠

A 서울 여의도 63빌딩을 한 번쯤 가봤을 거예요. 부모님 손 잡고 금빛 건물 안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가서 서울 도심과 한강을 내려다 본 기억이 나겠지요. 사진도 찍고요. 이 빌딩이 서울 시민은 물론 온 국민에게 익숙하고 사랑받는 것은 왜일까요. 서울을 대표하는 초고층 건물이기 때문이에요. 63빌딩은 높이 249m, 61층 규모로 국내 초고층 건물의 효시라고 할 수 있어요. 1985년 완공된 이후 2002년까지 17년 동안 국내 최고층 타이틀을 지켰을 정도니 대단하죠. 초고층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에요. 대상이 업무시설에서 주거시설로 옮겨진 것뿐이죠.

높이 200m 이상이거나 50층 이상

 우선 초고층이란 말부터 짚고 넘어갈게요. 보통 30~40층만 돼도 초고층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는 잘못된 표현이에요. 초고층에 대한 기준은 나라마다 다른데 국내 건축법은 ‘높이 200m 이상이거나 50층 이상’으로 정하고 있어요. 이를 고려할 때 국내에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 건 2002년부터예요. 첫 주자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지은 타워팰리스 1차로 최고 66층, 233m 규모에 달해요. 국내 초고층 고급아파트의 대명사로도 유명하지요. 특히 한 건물 안에 상가는 물론 피트니스클럽·수영장·골프연습장·옥상정원 등을 배치해 밖으로 나갈 일 없이 ‘원스톱 라이프’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 크게 부각됐어요. 초고층 붐이 일면서 아파트 높이는 63빌딩을 추월하기 시작했어요. 서울 양천구 목동의 현대 하이페리온 1차가 2003년 6월 69층, 256m라는 ‘스펙’을 뽐낸 것이죠. 하지만 2004년 4월 타워팰리스 3차(69층·262m)가 완공되면서 다시 초고층 1위 자리를 내줘야 했어요.

 이런 흐름은 부산으로도 퍼졌어요. 2010년 이후 해운대 일대에 초고층 아파트가 잇따라 들어선 것이죠. 사실 부산은 초고층 아파트 건립이 가장 활발한 지역이기도 해요. 그만큼 키 큰 아파트도 모여 있고요. 최근 해운대구에서 분양된 엘시티 더샵이 대표적이에요. 아직 지어지진 않았지만 준공 시점인 2019년 11월이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로 거듭나요. 85층, 333m로 63빌딩보다 80m 이상 더 솟구치게 되거든요. 현재는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80층·301m)가 전국 1위, 해운대 아이파크(72층·298m)가 2위를 각각 기록 중이에요. 전국 최고층 아파트 1~3위가 부산, 그것도 해운대 바닷가 주변에 밀집하는 셈이죠.

해당 지역 랜드마크 될 가능성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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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고층 아파트가 늘어난 이유는 간단해요. 그만큼 수요가 많기 때문이에요. 2000년대 들어 조망권이 크게 부각되면서 갈수록 고층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졌어요. 같은 아파트라 해도 산이나 공원, 강, 바다 등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 더 좋겠죠. 과거에는 단열성이 떨어져 냉·난방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강했지만, 기술이 좋아지면서 시선이 바뀌었어요. ‘초고층 아파트=고급 아파트’라는 인식도 한몫하고 있어요. 대부분 대형 건설사가 입지 여건이 뛰어난 곳에 고급 자재로 짓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대표 건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요. 당연히 가격도 비쌀 수밖에 없죠. 실제로 최근 고분양가 논란이 일었던 엘시티 더샵은 분양가가 3.3㎡당 평균 2730만원으로, 부산에서 분양된 아파트 가운데 최고가예요.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의 평균 분양가(1700만원)보다 3.3㎡당 1000만원 이상 비싼 셈이죠. 타워팰리스 1차 전용면적 164㎡형(67평)은 20억원을 훌쩍 넘기고요. 초고층 아파트가 부의 상징, 동경의 대상이 되자 건설사도 아파트의 키를 계속 높였어요.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초고층 아파트가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다는 속설 때문에 기피했지만, 높은 분양가에도 인기를 끌자 ‘더 높이’ 지으려는 업체들 간 경쟁심리가 작용했어요. 업체 입장에서도 이득이거든요.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자연스럽게 건설사와 아파트 브랜드 홍보가 되는 측면도 있고요.

2008년 금융위기 후 인기 꺾이기도

 그렇다고 마냥 잘 나가지만은 않았어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주택시장에서 초고층의 인기는 푹 꺾였어요. 경기 침체가 이어지니 규모가 크고 가격이 비싼 초고층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요. 자금 마련 부담이 큰 데다 수요가 줄어 되팔기도 어렵고, 가격 상승 가능성이 작아 시세 차익을 얻기 힘들다는 등의 이유로 시장의 외면을 받았죠. 2008년 이후 입주하는 초고층 가운데 주인을 찾지 못한 미분양 아파트가 적지 않았고 시세도 분양가 수준이거나 그 이하로 떨어졌어요. 반대로 요즘 같이 주택 경기가 좋으면 아파트의 층수는 올라가게 마련이에요. 집값이 오를 여건이 뒷받침되면 아파트가 하늘을 찌르게 되는 거죠.

거의 주상복합 … 주거용보다 용적률 높아

 신기한 것은 대부분의 초고층 아파트가 주상복합이라는 점이에요. 주상복합은 주거공간과 상업공간이 함께 있는 것으로, 아파트 외에 오피스텔이나 상가를 갖춘 건물을 말해요. 1~2층은 상가로 돼 있고 그 위는 아파트가 들어선,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건물이죠. 주상복합이 들어설 수 있는 땅은 상업용지인데, 이는 일반 아파트가 지어지는 주거용지보다 높은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축물 총면적의 비율)을 적용받아요. 용적률이 높으면 아파트 층수를 높게 올릴 수 있어요. 정리하면 주상복합은 일반 아파트보다 고층으로 지을 여력이 있는 편이고, 상업지구라 대부분 도심 요지에 들어서는 것이죠. 조금 복잡하죠.

 ‘높은 곳’을 선호하는 수요자가 있는 한 초고층 아파트의 인기는 계속될 것 같아요. 그런데 우려의 목소리도 있어요.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는 점이에요. 2013년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에 헬기가 충돌한 사고가 초고층의 취약점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예요. 당시 사고지점이 고층이어서 화재 진압도 어려웠었죠. 도시공간을 삭막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어요. 앞으로 초고층 아파트가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건물’로 거듭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죠.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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