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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유레카 유럽] 경제위기에 난민 겹친 영국 ‘브렉시트’ 다시 고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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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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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가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찬반투표에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잔류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캐머런 총리(오른쪽)가 23일 맨체스터시티 축구아카데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환담하는 모습.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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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번영하는 유럽과 통합된 유럽연합(EU)을 희망한다.”

그동안 잔류 여론 더 높았지만
최근 일부 조사선 탈퇴가 앞서
시진핑은 “영국은 EU 중요 회원”
내년 EU 탈퇴 투표, 캐머런 시험대

 영국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 22일 저녁 내놓은 말이다. 런던에서 60㎞ 떨어진 버킹엄셔에 있는 총리 별장인 체커스에서의 회동에서다. 시 주석은 그러면서 “영국은 EU의 중요한 회원”이란 말도 했다.

 전날인 21일엔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의 마크 카니 총재가 옥스퍼드대 연설에서 “EU 가입 덕에 영국이 얻는 개방성은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또 “영국은 유럽조약이 규정한 재화와 서비스, 자본·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에 대한 주요 수혜자”라고도 했다. 같은 날 발행된 1000쪽의 영란은행 보고서도 같은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 이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영국의 EU 잔류다. 이들은 ‘브렉시트(Brexit)’, 즉 영국의 EU 탈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영국 내 반 이민 정서가 팽배하던 2013년, EU 잔류 여부에 대한 주민투표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올 5월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에는 “EU와의 재협상을 토대로 2017년 말 이전에 주민 투표를 실시하겠다”고 확인했다. 현재로선 2016년 가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올 중반까지는 하나마나 한 투표처럼 보였다. 잔류 쪽이 안정적 우위였다. 그러나 그리스 경제 위기에다 난민 위기까지 겹치면서 EU에 대한 여론이 악화됐다. 최근 일부 조사에선 탈퇴 쪽이 앞서기도 한다.

 EU 주민 투표엔 사실상 스코틀랜드 독립 여부까지 연동돼 있다. 지난해 9월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 투표에선 독립 반대 진영이 10%포인트 차로 승리했다. 스코틀랜드를 장악한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그러나 영국이 EU 탈퇴를 결정하면 다시 독립 투표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곧 ‘EU 주민 투표=연합왕국 유지 투표’이기도 한 셈이다.

 현재 여론은 지난해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 때보다 혼조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시엔 투표일 가까이 가서야 엎치락뒤치락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한두 개 있었을 뿐이다. 이번엔 선거일이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여론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사실 영국은 유럽 대륙과는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1946년 “바다와 대륙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바다”라고 말한 일이 있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유럽 반감도 널리 알려진 바다. 프랑스도 피차일반이어서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이 “영국은 유럽보다 미국에 가까운 나라”라고 한 일이 있다. 1958년 출범한 유럽경제공동체(EEC·EU의 전신)에 영국이 15년 만에야 가입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로부터 2년 만인 75년엔 영국 내에서 찬반 주민투표까지 있었다. 당시 해럴드 윌슨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내에선 반 유럽 감정이 거셌다. 여론도 좋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나 EEC와의 소소한 재협상을 통해 윌슨 총리는 여론을 역전시키는 데 성공했고 결국 유권자의 3분의 2가 유럽 잔류를 선택했다.

 캐머런 총리는 이번 투표가 75년의 재현이길 기대하고 있다. 당장 여론 수치는 당시보다 낫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러나 반EU 진영의 역량이 크게 강화됐다. 유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명망 있는 기업인들도 포함됐다. 진공청소기로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제임스 다이슨 경이 대표적이다. 언론도 깊이 분열돼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당시 모닝스타란 한 언론만 영국의 EU 탈퇴를 지지했는데 지금은 데일리메일·데일리익스프레스·데일리텔레그래프, 심지어 더선·더타임스가 떠나는 쪽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노동당 당수인 제러미 코빈도 변수다. 노동당 자체는 EU 잔류 쪽이다. 그 역시 그렇다고 말했지만 막상 그러겠느냐는 의심도 크다. EU가 시장 경제를 절대시하는 신자유주의의 전진 기지란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다.

 캐머런 총리의 ‘재협상’ 전략이 먹히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다. 그는 이미 EU 조약 변경을 요하지 않는 수준으로 자신의 요구를 현실화했다. EU 회원국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고 일정 기간 이민자들에게 복지 혜택을 주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녹록하지 않다. 영국 언론들은 “EU 어느 국가도 영국의 이탈을 바라지 않으나 영국이 원하는 걸 주기도 어려운 입장”이라고 전했다.

 그러자 잔류 진영이 다급해졌다. 존 메이저,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전 총리들이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사설로 “캐머런 총리는 영국이 브렉시트로 떠밀려가는 상황을 반드시 중단시켜야 한다”고 요구할 정도다. 캐머런 총리가 다시 시험대에 섰다.

고정애 런던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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