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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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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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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지난 20~22일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1차 일정을 마친 이삼희(75) 할아버지에게 23일 전화를 걸었다. 전날 아침 금강산 외금강호텔에서 북녘의 누나 이란히(84) 할머니와 생애 두 번째 생이별을 한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전날 외금강호텔에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누나 앞에서 “난 안 울래. 우리 웃으면서 헤어지자”고 외쳤던 할아버지다. 그랬던 할아버지의 눈도 빨갰지만 “동생을 만났으니 이젠 하늘을 날 것 같다”는 누나 앞에선 엉엉 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23일 할아버지는 “이젠 뭘 기다리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이라고 했다.

 이삼희 할아버지뿐 아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마치고 돌아온 가족들은 만난 기쁨보다 또다시 헤어진 아픔에 먹먹해했다. 익명을 원한 한 가족은 “차라리 안 만나는 게 나았을 뻔했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다”며 통화를 하다 울음을 터뜨린 이도 있었고, 어떤 분들은 통화 자체가 어려웠다. 북녘의 형 김주성(85) 할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온 김주철(83) 할아버지는 청심환을 먹고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이산가족 상봉의 형식이다. 60~70만 명(통일부 추산) 중에서 상봉 대상자로 뽑힌 건 기적에 가깝지만 그 후의 아픔도 깊다. 6·25전쟁 이후 길게는 65년을 헤어져 생사도 모르고 있던 혈육을 만나는 게 고작 두 시간 동안 이어지는 여섯 번의 만남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외금강호텔에서 만난 한 가족은 “얘기를 할라치면 시간이 다 됐다는 방송이 나온다”며 “이렇게 찔끔 만나게 해주고 그 뒤엔 편지 교환도 안 된다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딱 하룻밤만 같이 자면 안 되겠느냐”고 읍소하는 이들도 여럿이었다.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로 ‘갑질’을 해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도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당위성만 외칠 게 아니라 형식의 다양화와 서신 교환 등 왕래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젠 이삼희 할아버지와 같이 ‘상봉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들의 아픔도 보듬는 배려가 필요하다. 금강산 상봉 현장에서 만난 한 의사는 “고령인 이산가족의 건강만 따지자면 심신의 탈진을 가져오는 이런 식의 상봉은 하지 않는 게 좋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75세 이삼희 할아버지는 이산가족 중에서 젊은 축이다. 70대 이상 고령자가 82%를 넘는다. 시간이 없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