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일찍 죽었으면 언니 안 태어나” … 한홍구 강연 동영상 고교 수업서 상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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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 강남구의 한 고교 교사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저주성 발언이 담긴 영상을 교실에서 상영했음이 14일 드러났다. 비교육적인 행동이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교사, 학생들에게 감상문 요구도

 시민단체 블루유니온에 접수된 학생 제보에 따르면 C교사는 지난달 18일 담임을 맡고 있는 반 학생들에게 ‘세월호를 통해 본 한국 현대사’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보여줬다. 그 교사는 역사가 아닌 영어 담당이다. 영상에는 지난해 11월 한 행사장에서 진행된 한홍구(56)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의 강연이 담겨 있었다.

 영상 속에서 한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이 남로당 활동을 하다 체포됐지만 당시 수사본부장이었던 김창룡이 풀어줬다면서 “저놈(김창룡)이 정말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근데 죽여도 될 사람을 하나 살려줬다. 박정희가 그때 죽어버렸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었죠. 우리 언니는 태어나기도 전이다. 태어나 보지도 못하는 거였는데 살려줬다”고 말했다. ‘우리 언니’는 박 대통령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 교수는 “세월호 그 죽음의 항로는 역사적으로 반민특위가 깨진 날, 한강 다리가 폭파되면서 이승만이 돌아와 폼 잡은 날, 그때부터 세월호 죽음의 항로가 시작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영상 상영이 끝난 뒤 C교사는 학생들에게 감상문 제출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C교사는 “학급에서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묵인한 도난 사건이 일어나 담임으로서 화가 많이 났다. 정의감을 가르쳐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영화 ‘암살’을 봤던 게 생각나 친일파 청산 문제를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 영상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보수 인사의 강연도 준비했으나 아직 보여주지는 못했다. 나는 전교조 소속도 아니고 정치적 활동을 한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해당 교사가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각급 학교에 주의 공문을 내려보낼 계획이다”고 말했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워싱턴대에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 독립 투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 교수는 출판사 일조각의 창업자인 한만년씨의 아들이자 제헌 헌법의 초안을 만든 유진오 박사의 외손자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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