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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추기경 13명 반란 … 교황에게 ‘동성애 포용’ 비판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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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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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성향의 추기경 13명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낸 비판 서한이 유출됐다고 이탈리아 언론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서한은 지난 4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열리는 ‘세계주교회의(시노드)’가 “결론을 정해두고 열리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교황의 개혁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바티칸 내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파와 이에 반대하는 보수파 사이 갈등이 격화되는 분위기라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동거·이혼문제 등 의견 대립
세계주교회의 도중 서한 유출
“결론 미리 내놓고 형식적 회의”
언론 보도 뒤 4명은 서명 부인

 교황청 전문 기자인 산드로 마지스테르는 이날 이탈리아 주간지 레스프레소에 실은 기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보수 성향의 추기경 13명이 시노드의 절차상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하는 서한을 지난주 직접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함께 하는 여정’이라는 뜻의 시노드는 가톨릭 내 주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황이 주교들을 불러 3주간 개최하는 회의다. 현재 전세계에서 온 270명의 주교들이 바티칸에서 회의하고 있다.

 서한은 “시노드가 동성애와 이혼 등의 문제에 대해 이미 정해진 결론을 손쉽게 끌어내기 위한 절차에 불과하다”며 교황을 비판했다. 시노드 절차에 따르면 소규모 그룹이 각 주제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이후 교황이 구성하는 위원회에서 토론 결과를 토대로 한 최종 결론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한에는 카를로 카파라(이탈리아), 안젤로 스콜라(이탈리아), 티머시 돌란(미국) 등의 추기경들이 서명했다고 마지스테르는 주장했다. 서한은 “일단 토론 주제가 담긴 문서가 너무 편파적이어서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토론 단위가 너무 소그룹으로 구성돼 사전에 결론을 정해놓게 될 가능성도 제기했다. 동성애자와 이혼·재혼한 신자들에 대해 포용적인 진보적 주교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 보수파 추기경들의 주장이다. 시노드의 최종 보고서를 검토하는 위원회 소속 위원들 구성을 살펴보면 교황이 일방적으로 임명한 사람들밖에 없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마지스테르는 “이 비판 서한에 서명한 추기경 중 한 명이 시노드가 진행 중이던 지난주 교황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사가 나간 후 서명에 포함된 티머시 돌란 등 4명의 추기경은 “문제의 서한과 관련이 없다”며 서명 사실을 부인했다.

 취임 첫해인 2013년부터 ‘가정’을 주제로 한 시노드를 소집했던 교황은 이번 시노드에서도 동성혼, 혼인 준비와 동거, 별거와 재혼 등에 대한 내용을 주요 의제로 삼도록 했다. 교황은 그간 가톨릭 교회가 죄악시해온 동성혼, 이혼 문제 등에 대해 전향적인 생각을 피력하며 개혁 바람을 몰고 왔다.

 앞서 바티칸의 고위 성직자가 스스로 게이임을 공개한 데 대해서도 교황은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는 것이 진정한 신의 계획”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실수를 저지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해야 하며, 교회는 그를 받아들이고 함께 해야 한다”며 관용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반면 보수파 주교들은 “전통적인 가족관까지 흔들면 안 된다”며 엄격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가톨릭에서 ‘중죄’로 처벌하는 낙태에 대해서도 교황은 전향적이다. 지난달 교황은 “낙태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며 “한시적으로 낙태죄에 대한 사죄의 권한을 주겠다”고 밝혔했다. 보수파 추기경들은 “낙태를 한 여성이나 시술을 한 사람은 곧바로 파문돼야 한다”며 현행 가톨릭 교리를 완화하는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서한에서 드러났듯이 가톨릭 내 보수파와 진보파 사이의 대립은 시노드에서 계속될 전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일 시노드에서 비난 서한을 의식한 듯 “정신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음모론에 빠져들지 말라”고 주교들에게 말했다고 AP는 전했다.

하선영 기자 dyan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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