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강남구 대치동의 폴크스바겐 매장. 최근 불거진 ‘배출가스 조작 파문’ 탓인지 평소보다 한산한 모습이었다. 직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한 30대 직원은 “일부 모델은 배출량 조작과 무관하다”고 말했다.
새 차는 구입 보류하고, 중고차는 깎아달라 요구 #이미지 추락으로 신규 등록 대수 8% ↓ #엔진오일 평생 교환권 내걸어도 #벤츠·BMW로 갈아타는 대체효과 전망
다음 날 찾은 신사동 매장도 썰렁했다. 이 매장 관계자는 “문제가 된 모델(제타 2.0)을 구입하려던 한 신혼부부가 구입을 미루겠다고 알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7명의 고객이 구매 계약을 했는데 그중 일부가 폴크스바겐 사태가 터진 후 보류했다”며 “타격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매장 분위기를 전했다.
‘폴크스바겐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째다. 골프·비틀·제타·파사트 등 디젤 연료를 쓰는 일부 모델이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한 게 지난달 중순 미국 현지에서 적발됐다. 한국에도 의심이 되는 차량이 판매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도 조사에 나섰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 사이에는 “지금 샀다가는 환경부담금을 우리가 지불하게 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폴크스바겐을 구매하려던 직장인 김모(35)씨는 대신 다른 수입 브랜드 차량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요즘 상황에 구매하면 괜히 금전적 불이익을 받을 것 같다. 조금 비싸도 벤츠를 구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멀어지는 고객을 잡기 위해 각 매장은 판촉 행사에 나서고 있다. 이달 안에 구매하면 1회에 수십만 원이 드는 엔진오일 교환 등 서비스를 평생 면제해 주는 행사를 진행 중이었다. 신사동 매장 관계자는 “(배출가스 조작 사태가 터진 직후) 한국 본사에서 결정한 내용”이라고 전했다.
폴크스바겐은 수입차 브랜드 가운데 합리적인 가격대와 좋은 연비로 20~30대 고객층에게 인기가 높다. 제타·골프 모델의 가격은 3000만원대다. 현대 소나타(디젤 기준· 2495만~2950만원)보다 조금 비싸다. SUV 모델인 티구안(3800만~4500여 만원)의 경우 기아 스포티지(2179만~2842만원)보다 1000만원가량 가격이 높다. 특히 티구안의 경우 ‘강남의 산타페’라고 불리며 인기몰이 중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이미지 추락과 매출 하락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사태 이후 폴크스바겐의 판매량은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 9월 수입차의 등록 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9.7% 증가한 2만381대였다. 전월에 비해 12% 가량 늘었다. 그러나 폴크스바겐은 7.8% 감소했다. 한 폴크스바겐 관계자는 "추석 연휴에 쉰 탓도 있다”고 해명했다.
중고 수입차 시장은 충격이 더 컸다. 6일 중고차 전문 판매업체인 SK엔카 양재동점을 들려봤다. 평균 하루에 20여 통의 폴크스바겐 매물 관련 문의가 들어온다. SK엔카 마케팅 관계자는 “문제가 된 모델의 가격을 깎아달란 요청이 많았다. 상당수의 고객이 ‘다른 브랜드를 대신 구매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SK엔카에 따르면 지난 9월 11~20일 사이 정해진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된 폴크스바겐 중고차는 하루 평균 60~70건 정도였다. 그러나 사태가 터진 지난달 21~30일 사이에는 이 건수가 140여 건으로 늘었다. 『중고차 사기 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쓴 중고차 딜러 이일구씨는 “개인(딜러)끼리 거래하는 중고차 시장의 특성상 더 낮은 가격대에서 매물이 거래될 가능성이 높다”며 “새 차 시장에서의 브랜드 이미지가 회복돼야 중고차 시세가 뒤따라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 위치한 폴크스바겐 매장은 서울 시내 12곳 가운데 절반이 넘는 7곳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자동차 담당)는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강남 고객의 특성상, 낮은 가격대의 국산 모델을 구입하기보단 비슷한 가격의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 모델로 갈아타는 ‘대체 효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글=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