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사무실서 운영하던 국군 보안장비 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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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 기술을 연구·개발하는 국방과학연구소(ADD)가 해외에서 운영중인 사무소(분소)에서 지난해 팩스의 암호화 기기를 분실하는 사건이 발생해 한국군의 암호체계가 유출됐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외교부와 국방부 등 정부 당국에 따르면 ADD가 A국가에서 운영중이던 NX-02R이라는 암호화 장비가 지난해 10월 분실된 사실이 확인됐다. NX-02R은 팩스에 장착해 사용하는 장비로, 팩스를 전송하거나 수신할 때 암호화해 외부유출을 막는 보안장비다.

그러나 이 장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사라졌는지는 파악되지 않았으며, 1년여가 지났지만 소재를 찾지 못했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해 6월까지 이 장비를 사용했고, 이 장비가 사라진 걸 확인한 시점은 10월"이라며 "4개월 사이에 없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팩스를 자주 사용하지 않다보니 사라진 사실조차 몰랐다는 얘기다. 이 당국자는 "이 장비는 사무실 팩스에 장착해 사용하는 것으로 고정식"이라며 "누군가 의도적으로 장비를 가져갔을 것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말 북한이 중국 등 옛 공산권 국가들을 통해 한국군이 사용하는 암호 장비를 구하려고 시도했었다는 점에서 북한이나 한국군과 무기개발 경쟁을 펼치는 나라에서 정보수집을 위해 가져갔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정보 당국은 보고 있다.

문제는 암호체계의 외부 노출문제다. 이 장비를 분실한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해외 공관이 무관부에서 같은 기종의 장비를 계속 사용했다. 이에 따라 한국군의 암호체계와 이 기간동안 주고받은 기밀 문건들이 외부에 유출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군 당국자는 "각 장비마다 서로 다른 암호체계를 적용하고 있고, 분석을 위해 분해하는 순간 기계자체가 망가지도록 설계가 돼 있다"며 "외부로 흘러나갔을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무관부 암호체계를 바꿨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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