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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 <593> 건강보험 정부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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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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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훈 기자

건강보험은 올해까지 5년 연속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 배경에는 개인들의 성실한 건강보험료 납부와 국가의 재정적 뒷받침이라는 두 축이 있습니다. 하지만 국고 지원은 현행법상 내년 말까지로 제한돼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보험의 안정성을 위해 그 시한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의 건강보험 지원 체계는 어떻게 돼 있는지, 다른 나라 상황은 어떤지 알아봤습니다.

4조6000억 흑자 낸 건강보험 … 국고 지원이 6조6000억

4조5869억원. 지난해 건강보험에서 나온 흑자 규모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재정 수입은 48조5024억원, 지출은 43조9155억원로 집계됐다. 이런 흑자가 4년간 이어지면서 지난해까지 쌓인 적립금은 12조8072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연말까지 누적 흑자가 16조원에 다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보건의료 시민단체들은 이 돈을 만성질환 등에 대한 보장성 확대와 국민의 의료 접근성 향상에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의료계에서는 병·의원 경영난이 심각하기 때문에 의료수가(의료서비스 제공에 따른 정률의 지원 금액)부터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흑자를 포함한 건강보험 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가입자들에게서 매달 걷는 건강보험료 비중이 가장 크지만 ‘정부 지원금’도 상당하다. 구체적으로는 보험료에서 80%, 정부 예산에서 14%, 담뱃세(담배부담금)에서 떼는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6%를 마련하고 있다. 한 해에 들어오는 건강보험 수입 5분의 1은 정부 예산 또는 ‘세금’으로 메워지는 셈이다. 지난해 보험료 수입이 41조2404억원으로 가장 많은 가운데 흑자 규모보다 훨씬 많은 6조5956억원이 정부 국고에서 건보 곳간으로 옮겨졌다. 정부 지원이 없다면 순식간에 대규모 적자를 기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의약분업 계기로 본격화된 정부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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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 지원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이는 의료보험의 변천과 맞물려 있다. 국내에 의료보험이 처음 등장한 건 1977년이다. 500인 이상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의료보험법이 적용됐다. 이후 공무원·사립학교 교직원(79년), 농어촌 주민(88년), 도시 주민(89년)으로 확대됐다. 98년에는 공무원·사립학교 교직원 의료보험관리공단과 227개 지역조합을 통합한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이 출범했다. 지금 같은 건강보험 체계가 등장한 건 2000년 7월이다.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과 139개 직장조합이 합쳐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바뀌었다. 정부의 지원은 조금씩 형태를 달리하며 20여 년간 이어졌다.

 건보공단 출범 이후엔 본격적으로 국고 지원 비율이 명시되기 시작했다. 정부가 팔을 걷고 나선 계기는 2000년 8월 시행된 의약분업에 따른 재정 파탄이다. 의약분업은 의사가 진료와 처방전 발급을 맡고, 약사가 약을 조제하는 역할 분담 제도다. 약물 오남용을 줄이고 의료 서비스를 정확히 제공한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하지만 이에 반발해 집단 휴진에 들어간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의료수가를 인상해주면서 2001년에만 4조원의 건보 적자가 발생했다. 의료 체계가 크게 흔들리자 복지부는 보험료의 절반을 국고로 지원하는 국민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을 만들었다. 정부 예산에서 40%, 건강증진기금에서 10%를 각각 지원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이는 5년 시한의 일몰법으로 2002년 1월 국회를 통과했다.

 특별법이 사라진 뒤에도 국고 지원은 계속됐다. 2007~2011년에는 보험료 예상 수입의 20%(정부 예산 14%+건강증진기금 6%)를 보전해주는 내용을 국민건강보험법에 반영했고, 2012년부터 5년 기한으로 해당 규정을 연장 적용하고 있다. 가입자들의 저항이 심한 보험료 인상을 최소화하면서 건강보험 보장성도 계속 확대한다는 취지에서다. 실제로 건보료 인상률은 2011년 5.9%를 기록했을 뿐 최근 3년간(2013~2015) 1%대로 억제하고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부문은 점차 확대되면서 2007년 4773억원이던 보장성 규모가 2014년엔 1조4450억원까지 커졌다.

 예산당국 “재정 건전성 고려해야”

 국고 지원이 규정된 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는 시효가 내년 12월 31일까지라서 1년여 남은 ‘시한부’ 신세다. 이를 연장하는 결정을 놓고 각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의료·복지 주무 부서인 보건복지부와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사이의 입장차가 나타나고 있다. 기재부는 국고 지원 규정을 더 이상 연장하기보단, 2017년부터는 일반회계처럼 해마다 치밀한 예산심사를 거친 뒤 지원 규모를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가입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현행 구조를 바꿔 예산을 좀 더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국가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등 국가의 재정건전성이 점점 나빠지는 분위기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면 복지부와 건보공단은 희귀 난치질환자·장애인 등 의료 취약층을 뒷받침하려면 안정적인 재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향후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기 때문에 정부가 섣부르게 발을 빼는 것은 위험하다는 논리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정부 지원 수준을 최소한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이를 놓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선 국고 지원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시작돼 186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 경영상 손실을 본 병원들에게 요양급여비용 2조3000억원을 선지급하는 등 적극적 역할을 맡은 건강보험의 안정성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받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인 새정치민주연합 양승조 의원은 2017년부터 정부 지원이 끊기면 곧바로 재정 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측했다. 2017년 7조2506억원, 2018년 8조1370억원을 거쳐 2019년에는 8조7722억원의 적자가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양 의원은 “국고 지원 중단은 의료 보장성 악화와 서민들의 보험료 부담으로 직결된다”고 말했다.

 정부의 국고 지원 시한을 삭제하는 법 개정안은 여러차례 나왔지만 가장 최근에는 지난해 새누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발의됐다. 국회에 1년째 계류 중이지만 처리 가능성이 높아졌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은 “정부의 건강보험 지원이 계속되는 동시에 실질적인 지원 규모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은 “정부가 건보료 지원액을 예상 수입액이 아닌 실제 수입액으로 사후 정산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상 수입액을 계산할 때 가입자 증가 등을 전혀 반영하지 않아 정부 지원금이 최근 3년간 1조7663억원이 누락됐다고 최 의원은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평균적으로 국민 의료비의 35%(2011년 기준)를 정부가, 20%는 본인이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정부 부담 11%, 본인 부담 37%로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건강보험 지원에 있어 국가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는 의미다. 선진국 중에는 정부가 건강보험을 대폭 지원하는 곳이 많다. 특히 한국처럼 특정 조건의 국민에게 가입을 강제하는 방식을 채택한 국가일수록 국고 비중이 높고 정부 지원이 더 늘어나는 추세다.

 프랑스는 1997년 준조세 성격의 사회보장분담금을 따로 마련했다. 이 세금이 건강보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02년 1.63%였지만 10년이 지난 2012년엔 12.16%로 늘었다. 독일은 2007년부터 건보 재정 일부를 세금으로 채워주기 위한 ‘건강기금’을 운용 중이며, 2010년엔 ‘사회보험 안정화법’을 제정해 국고 지원금을 증액했다.

벨기에는 건보 재정의 35%가 정부 지원

 건강보험의 모범국으로 불리는 벨기에는 전 국민의 99% 이상이 가입자다. 재정의 15%는 정부 예산으로 직접 지원한다. 담뱃세나 자동차세 등 부가세 형태로 떼주는 ‘대체 재정’도 20%에 달한다. 건보 지출 규모는 한국의 4배 수준이지만 높은 보장성과 만족도를 유지한다는 평가가 안팎에서 나온다. 안정적인 재정을 바탕으로 장기 계획을 짜는 데도 적극적이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건강보험에서 309억 유로(약 40조8000억원)의 수입을 거뒀는데 지출은 278억 유로(약 36조7000억원)였다. 수입과 지출 간에 차이가 나는 건 예비금을 남겨 놓기 위해서다. 이는 건강 관리와 관련된 법안들이 새로 제정될 경우 쓰기 위한 저축이다. 건강보험 정책을 담당하는 질병장애보험공단(RIZIV)의 토머스 루소 국장은 “정부 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재원을 확보했기 때문에 적자 또는 흑자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최대한의 혜택을 준다는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처럼 민간 회사들이 건강보험을 맡는 국가들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통제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는다. 네덜란드에선 중앙 정부가 건강보험사의 기본 보험료를 정해 주고, 추가 요금은 각 보험사에서 자체적으로 정한다. 그 대신에 보험사는 남는 이익금을 결산해서 가입자에게 상당 부분 돌려준다. 보험사들의 경쟁은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 정부는 필요할 때마다 국가 보조금 명목으로 보험료를 보전해준다. 네덜란드 건강보험연구소(ZiNL)의 한스 반 덴 호크 수석연구원은 “건강보험 재정의 절반은 고용주가 부담하며, 나머지는 개인이 낸 보험료가 대부분이다. 정기적인 정부 보조금은 없지만 재정 적자가 나면 소폭 지원해 균형을 맞추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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