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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Special Knowledge <592> 전통술 상차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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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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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란 기자

 올 추석에도 고마운 분들에게 전통술을 선물하고 차례상 청주를 음복하셨겠지요. 예(禮)를 중요시한 우리 유교문화에서 술은 사람 간의 어울림과 공경·화목을 돕는 촉매제 역할을 해왔습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축하주가 와인·샴페인 등 외국 술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전통주의 이해를 통해 오늘날 ‘향음주례’를 돌아보고 현대화된 상차림과 어울리는 방식을 생각해봅니다.

천년의 향 우리 술 한 상 오늘밤 어떠세요

고구려 건국설화 담긴 『제왕운기』에 최초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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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의 현대화·고급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황갑순 교수와 서울대 미대 공예과 연구팀이 전통 백자를 재해석해 만든 주병과 잔에 도소주를 담고 안주로 족편을 곁들였다. 재단법인 아름지기 사옥에서 열리는 ‘맑은 술·안주 하나’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사진 아름지기]

 한 나라·민족의 음식 문화는 뿌리내린 곳의 식재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 서양이 포도주와 같은 과일주 전통이 발달했다면 벼농사 중심인 우리는 곡물주 전통이 강했다. 특히 조선시대는 집집마다 술을 빚는 가양주 문화가 있었다. 주식인 쌀을 주재료로 꽃과 약초 등 산과 들의 모든 식재료가 함께 쓰였다.

 조선시대 술 양조법이 발달하고 술 종류가 많았던 것은 당시 양반가의 중요한 일이 ‘봉제사 접빈객(奉祭祀接賓客)’이었기 때문이다. 제사를 모시고 손님을 접대하는 것을 당연한 예로 생각했고 그 중심에 술이 있었다. 이때 술은 단순한 알코올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을 하나로 통합하고 유지시키는 커뮤니케이션의 상징적 매체였다.

 우리 조상의 음주 예절은 대개 2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예절을 중시하는 ‘향음주례’다. 어른을 공양하고 음식의 예의와 절차를 밟아 마시는 음주 문화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여럿이 어울려 마시는 ‘군음문화’다. 이때는 형식이나 절차 없이 거리낌없이 호탕하게 즐겼다. 어느 쪽이든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인간관계를 중시하여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핵심이었다.

 우리 술에 대한 최초 기록은 고구려의 건국설화가 담긴 『제왕운기』에 나타난다. ‘하백의 딸 유화가 해모수의 꾀에 속아 술에 만취된 후 해모수의 아이를 잉태하였는데 그가 주몽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때의 술은 당시 양조기술 등을 고려할 때 탁주, 즉 막걸리였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삼국지(三國志)』(위지 동이전)에는 무천(동예), 영고(부여), 동맹(고구려) 등 제천(祭天) 행사에서 ‘밤낮으로 술을 마시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당시 이미 누룩과 곡아로 술을 빚는 방법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해모수 설화에서 함께 주목할 것은 ‘합환주’의 전통이다. 혼인할 때 술을 빚어서 부부가 함께 마시는 전통이 술의 시원(始原)으로까지 올라간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우리 관혼상제 문화에서 빠지지 않는 게 술이다. 전통혼례식 때 합환주는 신랑과 신부가 술을 나누어 마심으로써 한평생 동고동락하라는 의식으로 전해진다.

고려 때부터 탁주·청주·소주로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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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소곡주의 재료인 쌀로 지은 고두밥. 소곡주는 충남 한산지방에서 백제시대부터 전해지는 명주다. ② 강웅기 작가의 따뜻한 술을 위한 주전자. ③ 성정기 디자이너가 제안하는 전통 청주의 공용(共用)병. 전통주의 주재료로 쓰이는 쌀 형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왼쪽은 센 술, 오른쪽은 부드러운 술을 위해 디자인했다. ④ 황갑순 교수가 제주 허벅주를 위해 만든 주병.

 우리 전통술은 막걸리(탁주)·약주(청주)·소주(증류주)로 대표된다. 이미 고려시대에 곡물주 양조법이 발달하고 증류법이 도입돼 이 같은 분류가 성립됐다. 쌀이나 밀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후 청주(淸酒)를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 적당량의 물을 섞어 다시 거른 술이 막걸리다. 약주는 곡물로 만든 발효주의 숙성이 거의 끝날 무렵, 술독 위에 맑게 뜨는 발효액 속에 싸리나 대오리로 둥글고 깊게 통같이 만든 ‘용수’를 박아 맑은 액체만 떠낸 것이다. 소주(燒酎)는 막걸리나 약주를 증류해서 내린 것이다. 소주를 내리기 위해서 고안해낸 장비가 소줏고리인데, 오늘날에는 고리를 이용한 단식 증류 대신 연속식 증류기로 증류한 다음 희석하여 만든 희석식 소주가 대세다.

 제조방법상 탁주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술 빚는 기술이 아주 능숙해져 백제의 인번이 일본에 누룩으로 술 빚는 방법을 전했다고 한다. 고려 후기에 증류주가 유입됐다. 몽골 침입(1231년)을 계기로 소줏고리와 그 이용법이 도입되면서 급속히 소주 문화가 발전했다. 조선시대 들어 남부지방에서는 탁주, 중부 지방에서는 약주, 북부 지방에서는 증류주가 발달했다. 이밖에 발효주와 증류주를 혼합한 혼양주가 등장하는 등 문헌에 기록된 우리 술 종류만 340여 가지에 이른다.

 ● 탁주류

 주세법상 탁주는 “전분질 원료와 국을 주원료로 하여 발효시킨 술덧을 혼탁하게 제성한 것”을 말한다. 탁주와 청주(약주)를 구분하는 경계는, 탁주는 술덧을 여과하지 않고 혼탁하게 하여 거른 것이고, 청주(약주)는 여과하여 맑게 거른 것이다.

 이화주, 오메기술, 계명주 등이 있다. 이화주는 고려시대부터 빚었던 술로 배꽃(梨花)이 필 무렵 누룩을 만들어 여름에 빚는다. 여느 술과 달리 특별히 쌀을 이용해 만든 누룩(이화곡)을 사용하고, 떡으로 술을 빚어 고급 탁주로 분류된다. 빛깔이 희고 걸쭉한 편인데 그냥 떠먹기도 하고 여름철엔 찬물에 타서 막걸리처럼 마시기도 한다.

 오메기술은 제주도 술로서 차조 가루로 빚은 술이다. 오메기술을 빚기 위해서는 우선 좁쌀을 가루 내어 익반죽하고 도넛처럼 가운데 구멍을 내어 떡을 만드는데, 이를 ‘오메기떡’이라 하며 이 떡을 이용해 술을 빚는다. 쌀이 귀한 제주에서 대부분 조와 같은 잡곡을 이용한 술이 전승되어 오고 있다. 성읍민속마을에 가면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제주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돼 있다.

 계명주는 술을 담근 다음날 닭이 우는 새벽에 다 익어 마실 수 있다고 하여 계명주(鷄鳴酒)라 불린다. 술을 빨리 익히기 위하여 엿기름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며, 단맛이 강하다. 조선시대 문헌인 『임원경제지』 『유원총보』 등에도 제조법이 기록되어 있다.

 ● 청주(약주)류

 우리 주세법에 따르면 약주와 청주를 구분하는 기준은 전통누룩의 사용량(약주엔 1% 이상, 청주엔 1% 미만 사용)이다. 본질적인 차이는 약주가 야생효소나 효모의 집합체인 전통 누룩을 사용한다면, 청주는 분리 추출한 효소를 쌀알에 배양한 일본식 흩임누룩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일제시대 이후 청주가 일본식 청주를 지칭하는 말로 쓰여 왔지만 전통적으로는 우리 청주에 갖은 약재를 첨가한 것이 약주라 하겠다.

 꽃이나 과실을 넣어 향기와 색을 내는 가향주류와 여러 가지 약재를 넣어 담는 약용 약주가 있다. 가향주류에는 송화가루로 담근 송화주, 진달래꽃을 넣는 두견주, 국화주, 연잎이 들어가는 연엽주, 이른 봄 소나무 새순으로 담는 송순주 등이 있다. 여러 가지 약재를 넣어 담는 소곡주, 신선주, 백일주, 구기자주 등은 약용 약주에 속한다.

 ● 소주류

 한국 증류주를 대표하는 소주는 크게 두 분류로 나뉘는데 전통방식의 증류식 소주와 주정(酒精, 95% 에틸알코올)을 원료로 한 희석식 소주가 있다. 안동소주와 문배주가 전자에 속하고 음식점 등에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소주가 희석식 소주다. 전통 증류주에서 차별화된 맛과 향을 얻기 위해 다양한 원료로 양조주를 빚고, 증류 온도를 달리하며, 도수와 맛이 다른 증류주를 섞고, 또 저장용기를 달리하여 숙성시켜야 한다. 법에서는 약재추출물의 함유량에 따라 증류주와 리큐르의 경계를 나누는데, 넓게 보아 증류주 또는 증류주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술에 다양한 전통주가 속한다. 안동소주, 진도홍주, 문배주, 이강주, 불소곡주, 인삼주, 계룡백일주, 송화백일주, 한주, 초화주, 감홍로주 등이 있다.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삼해주는 고려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궁중 술이다. 쌀과 누룩을 원료로 해마다 정월 첫 해(亥)일마다 세 번에 걸쳐 빚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조선 후기부터 한양의 술로 불리던 서울의 전통주이지만 현재는 조선시대 안동 김씨 가문에서 빚어지던 삼해주 기능 보유자인 권희자씨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아름지기서 전통·현대 ‘술상차림’ 전시회

 전통주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다. 해방 이후에도 식량과 원료 농산물 부족으로 주류 생산이 제한됐고 세수 확보에 유리한 일제식 주세행정이 계속된 탓이다. 우리 술이 본격 부활한 것은 1980년대 경제 발전과 정부의 관광 진흥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 최근 들어서는 대중화·현대화·고급화 노력에 힘입어 젊은 층에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는 전통주와 어울리는 음식 탐구 및 현대화된 음식문화에 알맞은 기물(器物) 개발도 한몫했다. 특히 최근에는 시대 흐름에 맞춰 전통 도자기 제작 기술을 응용한 다양한 술잔·술병이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술상차림’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재단법인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가 10월 30일까지 서울 통의동 사옥에서 전통주와 안주를 주제로 선보이는 ‘맑은 술·안주 하나’ 전이다. 1년여 간 기획을 통해 전국의 명주와 숨어 있는 술 10가지를 선정하고 전통 음식을 연구하는 온지음 맛공방이 여기 어울리는 전통음식을 만들었다. 현대공예·디자인 작가 30여 명이 선보이는 현대식 술병·술잔·그릇 등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문의 02-741-8373, 8376

※자료·도움말 :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 정혜경 호서대 교수, 국립농업과학원 정석태 연구관, 농촌진흥청, (재)아름지기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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