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개 건물 살피는 1020개 눈 … 스스로 ‘위험’ 판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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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보안 카메라 1020대가 24시간 연구시설을 지키는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상황실에서 보안담당 직원들이 대화면을 통해 학교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학교에 설치된 각각의 카메라가 알아서 물체를 식별하고 도난여부나 화재 발생을 감지해 상황실에 경고음으로 상황을 전달한다. [사진 에스원]

에스원 개발 ‘D - 안심존’ 설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가보니
몸싸움·화재·침입자 등 15개 상황
이상행동 파악 상황실에 경보음

하얀색 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남자가 연구실 문쪽으로 다가서자 빌딩 상황실에 ‘삐익’ 경보음이 울리고, 상황실 대화면엔 무단침입을 알리는 경고등이 번쩍인다. 이번엔 또 다른 남자가 복도에 있던 의자를 들고 재빨리 자리를 뜨자 상황실 경고음이 다시 울렸다. 화면은 의자를 들고 가는 남자의 모습을 뒤쫓기 시작했다. 앞선 침입자의 동선을 확인하기 위해 ‘하얀색 상의에 검은색 바지’로 검색어를 입력하니 같은 차림의 남성이 찍힌 영상을 추출해 화면에 바로 띄워준다.

 국내 처음으로 인공지능(AI) CCTV(폐쇄회로 TV)를 대규모로 도입한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이하 디지스트)의 보안·경비 시스템은 이렇게 작동했다. 67만㎡ 부지에 들어선 건물 26개동을 지키는 건 1020개의 CCTV다. 480㎡당 한대꼴로 촘촘히 세워진 CCTV는 여느 보안 카메라와는 다르다. 각각의 카메라가 스스로 ‘위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인공지능 CCTV라 불리는 이유다.

 ‘D-안심존’으로 이름 붙여진 이 시스템을 개발한 건 보안전문업체인 에스원. 2년여에 걸친 연구개발(R&D) 끝에 CCTV가 총 15개에 달하는 상황을 스스로 판단해 그에 맞는 위험 여부를 알릴 수 있도록 했다. 가령 엘리베이터에 있는 CCTV는 사람이 쓰러지거나 몸싸움과 같은 과격한 행동이 벌어지면 이를 이상행동으로 판단해 상황실에 경고알림을 한다. 주요 연구시설 앞에 설치된 CCTV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울타리(펜스)’를 쳐놓고 무단으로 이 구역을 들어오는 사람이 나타나면 이를 즉시 상황실에 알려준다. 연기나 불꽃을 인지해 화재발생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주변을 서성이는 수상한 배회자 파악도 가능하다. 연구실에 있는 중요 물건마다 도난방지 설정을 해두면 CCTV가 알아서 24시간 감시를 한다.

  차은호 디지스트 시설팀장은 “나노 의료로봇이나 생명연장 기술 개발 등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서 수행하는 국가차원의 기술유출을 막고 수백억원짜리 연구 장비 보호를 위해 24억원을 투자해 인공지능이 부가된 보안시설을 구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디지스트는 건물 바깥에도 인공지능 CCTV를 설치했다. 700명의 연구인력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응급버튼을 달아 버튼을 누르기만하면 상황실에 현장 소리가 실시간으로 그대로 전송된다. 사고 주변 CCTV는 자동으로 해당 지역을 비춰 범죄자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다. 장경미 디지스트 안전보안팀 직원은 “학교 안에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기존 CCTV는 영상을 찾아볼 수 있는 용도에 그치는 반면, 인공지능 CCTV는 사고 시점에 즉시 출동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최근 국정원 보안 평가에서도 정부출연 연구기관 중 처음으로 만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CCTV가 진화하면서 에스원의 무대도 넓어지고 있다. 병원과 공장이 대상이다. 최근엔 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출입통제가 늘어나면서 에스원은 병원용 시스템을 구축키로 했다. 마스크, 장갑과 같은 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의 병동 출입을 CCTV가 알아서 판단해 출입을 통제할 수 있 다. 삼성전자 주요 생산라인에도 변형한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마스크와 안전모, 작업복을 착용하지 않은 근무자를 파악하고 가스 누출과 같은 사고를 감지하는 용도로 쓰일 예정이다.

 이형우 에스원 경북사업팀 전략영업그룹장은 “실내수영장에서의 갑작스런 심정지 사고까지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 의뢰도 들어오고 있다”며 “지문과 같은 생체인식 정보까지 결합하면 인공지능 보안 시스템의 영역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구=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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