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신각수 전 주일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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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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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다하고 물길이 끊어진 곳에

올바른 길을 가면 언제든 좋은 때가 온다

길이 없는가 했더니

버드나무 무성한 곳,

밝게 피어 있는 꽃 너머로 또 마을 하나

- 육유(陸游·1125~1210)의 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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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구절은 남송(南宋) 시인 육유의 시 일부다. 2011년 외교관 생활 34년을 마감하며 외교부 동료와 친지들에게 보낸, 떠나는 글에 인용하였다. 공직 생활에서 원칙과 가치를 지키려다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럴 때 힘을 얻는 것은 산이 다하고 물이 끊어진 것 같지만 그 뒤에는 꽃이 밝게 피어 있는 마을이 있듯이 올바른 길을 가면 굽이가 높아도 골이 깊어도 좋은 때가 올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다.

 우리 삶은 등산과 비슷하다. 정상까지 가는 길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능선이 있으면 계곡도 있다. 누구나 삶에 있어 다양한 시련에 부닥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시련에 굴하지 않는 낙천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긍정의 힘은 인간에게 상상 이상의 엄청난 에너지를 준다.

 21세기 우리는 불확실성과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우리 삶의 이정표가 복잡하고 앞을 내다보기 힘든 세상이다. 어려운 세태일수록 우리 모두가 이 시구에서 보이는 긍정의 미학을 가지고 정도(正道)를 가겠다는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