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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졌다 다시 만나기 쉽고 다시 만났다 헤어지긴 더 쉽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44호 22면

일러스트 김옥

“너 그거 알아? 헤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만날 확률이 82퍼센트래. 근데 그렇게 다시 만나도 잘되는 사람들은 3퍼센트밖에 안 된대. 나머지 97퍼센트는 다시 헤어진대. 처음에 헤어졌던 이유랑 똑같은 이유로!”


영화 ‘연애의 온도’의 커플 이동희(이민기 분)와 장영(김민희 분)은 3년째 은행 사내커플로 비밀연애 중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 이들은 이미 이 꼴 저 꼴 다 보고 헤어진 사이. 사람들 앞에선 제법 쿨한 척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라고 말하지만, 상대방의 뒤를 캐거나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연애라도 할세라 서로에 대한 험담을 멈추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이별은 급작스럽다. 우리 세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걸 ‘쿨’이라 학습했지만, 우리가 ‘이별’이라 부르는 행위는 ‘끝’이라 말하는 순간 ‘끝’나지 않는다. 만약 ‘끝’이라 말하고 ‘끝’났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거기에는 지리멸렬한 ‘과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연인 시절 주고받았던 선물을 부숴 착불로 보내고, 페이스북을 뒤져 외도의 흔적을 염탐하고 뒤늦게 분노한다. 이별은 ‘선언’됐으나 이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연애의 온도’는 “쟤들 또 싸워!”라는 카피가 가능한 영화다.


오직 섹스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헤어진 남자와 다시 연애하기’는 진화론적으로 적절치 않다. 헤어진 것에는 이유(다양한 생물학·사회학적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헤어지고 다시 만난 커플을 여럿 알고 있다. 그 중에는 한 번 헤어지고 ‘다시’ 만났다가, 청첩장까지 찍고 남자가 ‘다시’ 잠적하는 바람에 결혼이 깨진 고등학교 단짝 친구도 있다. 하긴, 이혼했다 재결합한 후 6개월 만에 별거 중인 커플도 있으니 말을 말자. 여기에서 흥미로운 건 극심한 이별의 고통을 겪고도 여전히 헤어진 남자나 여자와 만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째서 사랑은 반복되는 것일까.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헤어지고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일까.


이쯤에서 고백할 게 하나 있는데, 나 역시 지금 헤어진 남자와 다시 만나 ‘또 다시’ 헤어지는 얘기를 소설로 쓰는 중이다. 딱히 그럴 의도가 있는 건 아닌데도 내 소설의 8할은 ‘실연당했거나’ ‘이혼했거나’ ‘헤어지는 중인’ 사람들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정말이지 이젠 새로운 사람과 만나 새롭게 ‘시작’하는 얘길 쓰고 싶다. 하지만 소설에서 매일 “헤어져!”’라는 말을 남발했더니, 이제 시작하는 이야기를 시작할 수가 없다. 가끔 당혹스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SNS가 바꾼 풍속도 … 과거는 이제 ‘옛날의 과거’가 아니다최근에 종영된 ‘구여친클럽’이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10여 년 전 방영됐던 드라마 ‘연애시대’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연애시대’는 이혼한 남편과 다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또 다른 드라마 ‘응급남녀’는 ‘연애시대의 병원판’으로 역시 이혼한 남편과 같은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헤어진 남자도 다시 보자!”라는 말이 이젠 실용주의 관점에서 꽤 괜찮은 충고가 될 수도 있음을 증명한다.


어째서 최근 미디어에서는 ‘헤어진 남자’와 ‘헤어진 여자’가 다시 만나는 이야기들이 많아졌을까.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달라진 조건과 무관치 않다. 2009년 구글의 에릭 슈미트는 기념비적인 말을 남겼다. “당신한테 아무도 모르길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애초에 그걸 하면 안 되는 거겠죠.” 그는 이 얘길 꺼내기 전, 모든 젊은이들에게 가까운 미래에는 온라인 과거로부터 이름을 바꿀 권리가 자동 부여될 것이라는 예측성 발언을 남겼다.


과거는 이제 과거가 아니다. 우리가 알던 이전의 ‘과거’와 지금의 ‘과거’는 의미가 달라졌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기록들이 인터넷에 남는다는 걸 안다. ‘삭제’란 그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일 뿐, 인터넷 어딘가에 ‘반드시’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완벽한 프라이버시의 실종 상태에 살고 있다.


‘동창회’가 만들어지고 ‘아이 러브 스쿨’이 유행하던 그 시절에 우리는 학교를 졸업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헌 사람은 가고 새 사람이 왔다. 잊혀졌고, 곧 채워졌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새 정체성을 얻었다.


하지만 인터넷은 ‘절대’ 잊지 않는다. 과거를 과거로 놔두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든 부활해 좀비처럼 움직인다. ‘알 수도 있는 사람’ ‘친구의 친구’로 언제든 등장한다. 헤어진 애인이 복수를 위해 유포하는 ‘복수 포르노’란 새로운 장르가 ‘성인 포르노물’ 시장에 생겼다는 걸 알고 섬뜩했다. 그건 뭘 의미하는 걸까.


소셜 네트워크는 ‘과거의 사람들’이란 개념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행 중에도, 지구 어디를 가든, 심지어 헤어져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잃어버린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제 곧 20세기 버전의 신파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정의 내려야 할 ‘이별’ ‘스토킹’이란 말은 이제 범죄의 냄새를 제거한 채 일상어에 가깝게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타인의 일상을 ‘스토킹’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누군가의 우편함에서 편지를 몰래 꺼내보는 것은 명백한 범죄 행위였다. 하지만 이제 이메일 계정이나 페이스북 계정을 해킹당했다는 이야기는 귀찮은 불행일 뿐이다. 스마트폰이 ‘여섯 번째 손가락’이 된 지금 세대는 개인주의를 지향하지만, 누구보다도 ‘타자 지향적인’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어느 세대보다 많은 자유를 원하지만 그 어떤 세대보다 불안함에 떨며 안전을 갈망한다. 자유와 안전은 상반된 개념이다. 자유롭다는 건 정확히 말해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문법은 이토록 다르고, 이 엄청난 ‘간극’과 ‘차이’의 ‘사이’를 이해하고 설명할 그 어떤 질서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토록 혼재된 세상에서 인간의 관계는, 사랑은, 대체 어떻게 진화하게 될까. 헤어져도 헤어지지 않은 상태(헤어진 애인을 스토킹하는 사람들), 육체적으로 만나도 정신적으로 멀어진 상태(카페에서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 중인 연인들), 섹스해도 섹스하지 않는 상태(장거리 연애로 스카이프를 통해 벌어지는 사이버 섹스), 연결되어 있지만 언제나 외롭다고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관계의 카오스를 바라본다. 무너지는 ‘이별의, 이별의, 이별의, 도미노’를…. 이별은 이제 분명 다른 방식으로 정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


백영옥 ?광고쟁이, 서점직원, 기자를 거쳐 지금은 작가. 소설『스타일』『다이어트의 여왕』『아주 보통의 연애』 , 인터뷰집 『다른 남자』 ,산문집『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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