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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부 잘못부터 바로잡아야 노동개혁 성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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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단독으로 추진하겠다고 11일 발표했다. 다음주 초부터 새누리당과 당정 협의를 하는 등 노동개혁 입법을 위한 절차를 밟겠다고 한다. 정부가 정한 협상시한(10일)을 넘긴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입법을 위한 토대는 마련돼 있다. 그동안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한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논의한 범위 안에서 입법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노사정 대화가 지지부진해 올해를 넘기면 노동개혁은 물 건너갈 수 있다. 당장 3개월여 뒤면 정년 60세가 시행된다. 청년실업률은 지금도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이 연장되면 인건비 부담을 우려한 기업이 일자리를 늘릴 리 만무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업체 근로자 간 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그 격차가 얼마나 큰지 ‘21세기판 신분제’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래서는 사회통합이 어렵다. 갈등이 증폭되면 경제나 사회구조 자체가 흔들릴 위험도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단독으로라도 노동개혁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된다. 그러나 조급해선 안 된다. 노동개혁은 제대로 하면 경제의 심장을 튼튼하게 해서 두고두고 대한민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부실한 개혁을 하면 내부가 곪게 된다. 따라서 더 이상 개혁이란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꼼꼼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인 장벽도 고려해야 한다. 당장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겠는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국회 선진화법에 따라 직권 상정도 할 수 없다. 정부 단독으로 추진한다고 추진될 상황이 아니란 얘기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수차례 언급한 것처럼 노사정 대타협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대타협은 노사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정부도 오류를 수정하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정부가 고수하고 있는 취업규칙 요건 완화와 저성과자 해고 관련 지침 제정은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노사정이 합의해서 개최한 8일 토론회에서 모든 발제자와 토론자가 “손쉬운 행정지침보다는 중장기적으로 법리와 여론을 수렴해 법제화하는 것이 맞다”며 정부 방침에 반대하지 않았는가. 이걸 왜 정부가 노동개혁의 상징인 것처럼 몰아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론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지지하고 있다. 정부가 만든 노동개혁의 상징에 대해선 등을 돌렸다. 그런데도 지침 제정 방침을 고수하는 건 정부가 법제화하는 데 자신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 상징 프레임을 깨야 통 큰 합의가 가능하다.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두 가지 사안은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이 국면에서 자극과 압박보다는 호소와 설득이 필요한 마지막 단계”라고 한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노동계도 모든 협상 내용을 부정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경영계는 비용 부담만 내세워선 곤란하다. 정부가 단독 추진 의사를 밝힐 정도로 시간이 별로 없다. 주말에라도 바짝 고삐를 당겨 국민에게 합의문을 내놓는 성숙한 노사정의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