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 벌이로 시작했는데…" 고향친구 동원 보이스피싱 인출 조직 만든 20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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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해 중국으로 피해금을 송금하던 국내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구속된 20대 남성은 처음엔 ‘용돈벌이’를 목적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했다가 국내 총책 역할까지 맡았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은 피해자들의 돈을 인출해 수수료를 떼고 중국에 송금해준 혐의(사기 등)로 국내 총책 강모(22)씨를 구속하고 박모(23ㆍ여)씨 등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4일 밝혔다.

고향친구 사이인 강씨와 박씨 등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대포통장 9개로 돈을 입금하면 이를 인출해 5~10%의 수수료를 떼고 중국으로 송금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400여명에 달했고 피해금액은 1억7000여만원이었다.

이들과 연계한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은 주로 ‘몸캠피싱’이나 조건만남을 빙자한 사기 행각을 벌였다. 몸캠피싱은 랜덤채팅 앱을 통해 남성들에게 접근, “영상통화를 하자”고 유인해 남성의 알몸 영상 등을 확보하는 사기다. 알몸 영상을 확보하고 나면 ‘사진첩.zip’와 같은 파일명의 위장 악성코드를 보내 스마트폰을 감염시키고, 피해자의 전화번호부를 탈취해 “돈을 주지 않으면 영상을 주변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조건만남을 빙자한 사기 역시 랜덤채팅으로 남성을 유혹하고 “선입금을 하면 조건만남을 해주겠다”며 돈을 받아 가로채는 수법이다. 이처럼 사기에 당한 피해자들이 대포통장에 돈을 송금하면 강씨 등이 국내에서 인출해 중국으로 송금했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지난 2013년 4월 용돈 벌이를 위해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에 처음 가담했다. 그러나 얼마 후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고 그해 11월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됐다. 그러나 생활비가 부족해지자 지난해 8월 다시 인터넷을 통해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과 접촉했다. 이번엔 단순한 인출책 대신 직접 총책 역할을 맡고 고향 친구와 고향 선배 부부, 사촌 동생까지 동원해 조직을 꾸렸다.

또 11월엔 중국 총책의 눈에 들어 사촌 동생과 함께 중국 광저우로 불려 가기도 했다. 강씨 형제가 광저우에 도착하자 중국 조직은 고급 술집에서 술을 사주고, 최고급 아파트를 견학시켜 주며 “시키는 일만 잘하면 중국에서 떵떵거리고 살 수 있다”고 강씨를 설득해 보이스피싱 일을 시켰다. 그러나 강씨는 조직원들의 감시와 실적 압박, 수익 분배 문제 등으로 한달만에 다시 귀국했다. 강씨가 중국에 가서 받은 돈은 음료수 값 약 5만원이 전부였다.

강씨는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범행을 계속해왔다. 그러다 지난달 31일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이 범행에 쓰인 대포통장 거래내역을 통해 확인한 피해자는 약 400여명에 달하지만, 이 중 경찰에 정식 신고한 피해자는 10여명에 불과했다. 신고하면 자신도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은 대부분 성매매 혐의로 자신도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 신고를 하지 않았고, ‘피해사실이 없다’는 식으로 진술했다”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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