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 2035

일본의 사과도 제대로 ‘알아야’ 받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이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 현
JTBC 국제부 기자

‘마더 파더 젠틀맨’을 외치는 싸이의 노래가 대한민국을 뒤덮었던 2년 전, 또 다른 젠틀맨이 화제가 됐다. 야스쿠니 신사(神社)를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신사(紳士, 젠틀맨)”라고 답한 우리 청소년들, 일명 ‘야스쿠니 젠틀맨’ 얘기다. 누리꾼들은 우리 청소년들의 역사 인식 실태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아연실색했다. “어떻게 야스쿠니 신사를 모를 수 있나” “기자가 학생을 섭외해 멘트를 써준 것 같다”며 혀를 찼던 내 또래들에게, 야스쿠니 신사에서 딱 한 발짝 더 들어간 질문을 던져본다.

 도조 히데키는 누구일까.

 일본의 군국주의자로 진주만 공격을 감행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인물이다. 가장 악질의 A급 전쟁범죄자인데,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보다 인지도가 훨씬 낮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몰랐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등 아는 일본인 이름을 다 떠올려도 도조 히데키는 낯설었다. 나만 모르나 싶어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열에 아홉이 누구냐고 되물었다.

 흔히 지적하듯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에서 빠진 탓만은 아니다. 나는 수능에서 국사 시험을 분명히 봤는데도 이 모양이니 말이다. 국사 수업에서 일제강점기를 다룬 게 두 시간쯤 될까. 그 길고 어둡던 치욕의 역사를 서둘러 훑어보고 국사 공부에 마침표를 찍었던 것 같다.

 얼마 전 ‘일본 드라마 추천’을 검색했더니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수작(秀作)이라며 ‘천황의 요리사’를 소개한 글이 수두룩했다. 1904년 서양 요리에 입문해 훗날 일본 궁내청의 수석 요리사가 되는 아키야마 도쿠조의 성장기를 담았다기에 대장금을 떠올리며 재생했다. 천둥벌거숭이 같던 주인공이 진지하게 요리를 배우며 성숙해 가는 모습, 다채로운 식재료와 식욕을 자극하는 요리 소리는 역시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볼수록 이상했다. 매회 도입부에 러일전쟁 상황을 요약해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빗댔다. “전쟁은 천황 폐하의 탓이 아니라 군부 탓”이라며 일왕의 면책을 위해 GHQ(연합군최고사령부)의 환심을 사려 주인공이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나온다. 제국주의 일본을 미화하는 장치가 곳곳에 숨어 있는데, ‘추천 일드’ 검색어를 달아 넣은 글이 놀랍도록 무감각해 보였다.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한다고 도조 히데키 얼굴 모양의 아이스바를 씹어 먹는 중국 청년들이라면 이 드라마를 어떻게 봤을까.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쏟아진 기사와 특집 다큐멘터리가 넘쳐났던 지난 8월. 당장 취업과 결혼, 집값이 걱정인 이들에겐 어쩌면 매년 반복되는 시시한 레퍼토리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 기본은 알고 살자.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야 ‘제대로 사과’도 요구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이현 JTBC 국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