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훈련생, 1호 교사 … 근대화 산 증인 폴리텍대학 한동룡 교수 퇴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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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가난을 딛고 기술입국을 일군 ‘첫 번째 펭귄’이 뭍으로 올랐다. 첫 번째 펭귄은 남이 주저할 때 용기를 내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을 일컫는다. 선도적 도전자란 뜻이다. 지난달 31일 한국폴리텍대학 창원캠퍼스에서 뭍으로 오르는 펭귄을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동룡(65·사진) 교수의 퇴임식이다.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1970년대 국립직업훈련원의 1기 훈련생이었고, 제1호 훈련교사였다. 이후 평생을 기술 밭에서 뒹굴었다. 한 교수는 “내 기술로 제자를 길러내고, 그들이 세계 최고의 기업을 일구고 국가를 살찌게 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70년 유엔의 후진국 지원사업으로 설립된 중앙직업훈련원(현 인천폴리텍대학) 훈련생 1기로 입학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에 불과하던 시절이다.

한 교수는 “부산성지공고에 다닐 땐 공사장에 굴러다니는 철근토막을 주워 그걸 가공하며 기술을 익혔다. 그게 기술이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래서 훈련원에 입학해선 주눅이 들었다고 한다. 선진국에서 파견된 자문관들이 고급기술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걸 보고서다. 밑바닥부터 새로 익혀야 했다. 그들의 기술을 습득하고 졸업하자 마을이 떠들썩했단다. “그땐 훈련원을 졸업하는 날이 축제 날이었다. 시골 방앗간은 졸업생에게 줄 떡을 만드느라 쉴 틈 없이 돌아갔다. 부모는 ‘내 자식만큼은 배고픔에서 해방될 것’이란 기대에 눈물을 흘렸다.” 그의 회고다.

 72년 훈련원을 졸업한 그는 독일 정부의 기술공여사업으로 설립된 한독부산직업훈련소 교사로 임용됐다. 제1호 훈련교사다. 이후 정부가 설립하는 대전·안성 등의 직업훈련원을 기획하고, 교육계획도 수립했다. 70년대 직업훈련원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을 정도다. 한 교수는 “그때는 하루빨리 중화학공업 기능인력을 배출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신내림 같은 사명감이 나를 움직였다”고 했다.

 그는 “독일이나 일본의 기술자에게 기술을 배울 땐 자존심도 많이 상했지만 이젠 다른 나라에 직업훈련을 전수해주고 있다. 기술 하나로 커 온 한국이란 생물체를 보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가 늘 가슴에 품고 있는 말은 전국 폴리텍대학에 걸려있는 ‘기술인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旗手)’라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 휘호다.

 한 교수는 “청년실업률이 최악이라고 하는데, 산업현장은 일할 사람을 못 찾고 있다. 기술의 가치와 기능인의 실력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이걸 일신할 새로운 펭귄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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