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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노사정위, 이번엔 노동개혁 끝장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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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노총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에 복귀해 어제 첫 노사정대표자회의가 열렸다. 지난 4월 이후 중단돼 온 노동개혁 논의가 재개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허송한 140일이 너무 아깝다. 그동안 한국 경제를 둘러싼 환경은 크게 악화했다. 그리스 사태와 중국 증시 불안 같은 외풍 속에서 수출 감소와 가계부채 급증으로 경제 체력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노사정위가 이번엔 노동개혁에 대한 합의를 반드시 이끌어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60세 정년을 의무화하는 법이 내년 시행된다. 노사 간 양보와 타협 없이 기업에만 부담을 지운다면 정년 연장의 효과를 보기는커녕 ‘고용절벽’을 맞기 쉽다. 독일과 스웨덴·캐나다·뉴질랜드 같은 선진국은 이미 10~20년 전 노동개혁을 마무리했다. 이들 나라의 꾸준한 성장세는 노동개혁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요소라는 점을 방증한다.

 노사는 서로를 믿지 못하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미래세대를 위한다면서 청년을 볼모로 잡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다. 특히 노동계를 대표하는 한국노총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에 복귀하면서도 임금피크제 확산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과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라인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핵심 문제는 이게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간 이중구조와 양극화 해소가 가장 시급하다. 고용 유연화, 근로시간 단축, 임금체계 개편 등도 중요하다. 그런데도 또다시 임금피크제와 해고 가이드라인을 내세워 노사정 대타협을 거부한다면 한국노총은 ‘상위 10% 근로자의 이해관계에 매몰돼 전체 근로자의 이익을 외면하는 귀족 노조’임을 스스로 입증하게 된다. 기업 역시 비용 절감이라는 단선적 시각에 매몰돼선 안 된다.

 정부는 공정한 중개자의 본분을 다하되 노사 양쪽에 명확한 시한을 제시해야 한다. 합의가 안 될 경우를 대비한 대책(플랜B)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노사정위를 통한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명분에만 매달리기엔 시간이 없다. 정년 연장을 위해서라도 통상임금과 임금체계 개편, 근로 시간 단축 등은 하루빨리 손질해야 한다. 한국노총이 노사정위를 뛰쳐나가기 전에도 65개 개혁 과제 중 대부분은 이미 의견 접근이 이뤄진 상태였다.

 정치권도 참견이나 뒷다리 잡기를 자제해야 한다. 야당 일각에서 벌써 “노사정이 합의해도 통과시키지 못한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국익보다 정파의 이익을 우선시하겠다는 ‘정치적 알박기’에 다름 없다. 야당은 2004년 열린우리당 시절 노사정 합의로 만들어진 비정규직보호법 대신 원안보다 후퇴한 법안을 직권상정으로 통과시켰던 과오를 반복해선 안 된다. 그 이후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급속히 악화된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정치권 모두 노동개혁을 치적 과시나 선명성 경쟁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 성숙함을 보여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