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소비풍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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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연전에 나는 제3세계 주거양식읕 연구하는 어느 독일인이 인도네시아 여행담을발표하는 작은 모임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인도네시아 농촌의 왜곡된 소비구조를 보여주는 한가지 예를 들었다. 전기가 아직 들어오지 않는 인도네시아 벽촌의 농부가 냉장고를사서 옷장으로 사용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이내 나는 폭소를 터뜨린 내 스스로에 대해 화가 났다. 그 이유는 우선 이일화가 결코 웃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차라리 슬픈 이야기라는 것이며, 그 다음으로는 제3세계인의 하나로서 이일화가 이들 유럽인들 앞에서어쩐지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보이는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농부는 코미디의 주인공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는 관객을 웃기다가 그들이 극장을 나오면서부터는 어쩐지 서글퍼져서 울어버리게 되는 코미디언 자신이 아닐까.
이 이야기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결코 적은 수입을 가졌다고 할 수없는 대학교수인 나도 우리집 밥상에서 1주일에 하루 육류반찬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런 나라에서 육류를 주로 먹는 나라의 사람들 체질에나 맞을 코피 소비량이 왜 이리 많단 말인가. 그뿐인가. 유럽인들도 와서 머리를 휘휘 내 흔드는 음식점·다방·호텔의 사치스런 장식과 엄청나게 비싼가격표.
소위 유명 메이커에서 판매하는 옷들의 터무니 없는 가격. 기름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나라, 심해가는 대기오염, 좁은 도로망, 어이없이 비싼휘발유값에 맞지 않는 이 마이카의 물결과 그에 상응하는 기름을 때는 고층 아파트붐. 국민의 식생활수준이 아직도 저급한 우리 사회에서 국민 건강에 한치도 도움이 되지 않을 청량음료의 범람.
이런 음료수의 물결은 서울의 지하철 정류장 구석구석까지도 장악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도대체 아직도 최저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허다한 사회의 소비습관이란 말인가. 이같은 왜곡된 소비구조를 조장하는 것은 결코 저임금에 허덕이는 노동자들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교육받은 중산층에 의해 오히려 조장된다.
거기에다가 나만 돈을 벌면 된다는 얄팍한 상흔은 이를 더욱 부채질 한다. 결국 이 왜곡된 소비구조는 국민경제를 해치고 가지지 못한사람들의 상대적 빈곤감을 더욱 가중시킨다.
구미의 지식인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 그들의 정신사적 전통속에서 『소비는 미덕』 이라는 슬로건을 부르짖을수 밖에 없다면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은 『내가돈이 있어서 쓰는데 어떠냐?』는 식의 논리를 관철할 것이아니라 바로 「소비의 윤리성」을 외쳐야할 시점에 이르지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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