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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라크서 ‘허준’ 1년 방영 … 2조원 공사 또 따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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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달 초 미국 LA에서 열린 한류 콘서트 ‘KCON 2015’는 거의 매진됐다. 관객의 90% 이상이 미국인이었다. [사진 CJ E&M]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신도시 진푸신구(金普新區)에 위치한 마이칼러 백화점. 3년 전만 해도 2개에 불과했던 한국산 옷 가게가 지금은 10개로 늘었다. 이곳에서 3년째 ‘K-패션’ 전문점을 운영하는 장핑(張萍·여·29) 사장의 영업 방식이 최근 바뀌었다. 2주에 한 번 한국을 방문해 백화점이나 상가를 둘러보고는 ‘팔릴 만한 물건’이 보이면 즉석에서 사진을 찍어 웨이신(微信·중국 SNS)에 올리며 “사실 분 있으세요?”라는 메시지를 띄운다. 곧이어 실시간 주문과 판매가 이뤄진다. ‘진품 한류’의 새로운 유통 채널이다. 지난 11일 다롄에서 만난 장 사장은 “웨이신을 통한 한국 제품 판매가 최근 트렌드”라며 “메르스 사태 때 한 달간 한국에 못 갔다. 그 대안으로 한국 패션을 본떠 만든 중국산 옷들을 구입하려 광저우(廣州) 도매시장까지 가서 조사해봤으나 빈손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흉내를 내도 ‘한국 스타일’이 살아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국 스타일, 바쁘게만 살아온 우리 한국인들이 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한국 제품을 둘러싼 일종의 스타일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롄방송국의 한국 문화 소개 프로그램인 ‘중한즈차오(中韓之橋)’를 진행하는 장혜수(27) 아나운서는 “한국 여성들처럼 눈썹을 ‘일자(一字)’로 그리는 화장법이 최근 중국에서 유행이다. ‘이쯔메이(一字眉)’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 곡선을 선호하던 중국 여성들이 한국식 눈썹으로 바꾸고 있다는 얘기다. 한류는 삶의 디테일 혹은 라이프스타일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 L A에 이어 뉴욕에서 열린 ‘KCON 2015’를 찾은 미국인들이 한복 체험을 하거나 ‘K-푸드’ 부스에서 빈대떡을 먹고 있다. [사진 CJ E&M]

 한류는 더 이상 특정 분야의 일시적 반짝 현상이 아니다. 한국 교민이 20여 명밖에 안 되는 사회주의 국가 쿠바에도 한류 열풍이 분다. 한류가 세계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 현상으로 해석된다. 2012년 초 쿠바 TV에서 한국 드라마 ‘내조의 여왕’을 방영하면서 한류가 시작됐는데, 지금은 DVD 가게에서 한국 드라마가 할리우드 영화보다 잘 팔리고 있다. 정치와 경제만으로 불러일으키기 힘든 글로벌 폭풍, ‘문화의 힘’이다. 이달 초 미국 LA에서 사흘간 열린 한류 문화 대축제 ‘KCON 2015’도 한류의 인기를 잘 보여줬다.

 1990년대 후반부터 드라마가 불을 지핀 ‘한류 1.0’, K팝이 중심인 ‘한류 2.0’에 이어 패션·미용·한식·의료 등 실생활 라이프스타일로 한류의 영토가 확장되고 있다. 올해 밀라노 엑스포에서 관람객이 가장 긴 줄을 선 곳도 한식을 제공한 ‘K-푸드(food)’였다. 이는 산업적 효과로도 이어진다. ‘K-뷰티’만 해도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매출액은 2014년 4674억원이다.

 Korea(한국)의 첫 글자 K에 이어 붙는 장르가 전방위로 확산되는 이 시대에 한류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세계는 한국 문화를 궁금해한다. 광복 이후 70년간 세계를 놀라게 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이 이뤄낸 효과다. 이제 한류의 지속적인 확산과 발전을 위해 ‘포스트 한류’를 고민해야 할 때다. 한류와 한국 문화의 의미와 위상을 재점검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크게 세 가지로 모인다. 첫째, 한류가 ‘Korea 브랜드’의 프리미엄화를 이루는 촉매제가 돼야 한다. 둘째는 한류를 글로벌 산업 인프라로 재인식해야 한다. 셋째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부활시키는 전략적 채널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긍정적인 신호도 보인다. 전후 복구 사업이 한창인 이라크에서 3년 전 신도시 건설을 수주한 한화건설이 ‘한류 마케팅’을 구사했다. 2013년 한화는 드라마 ‘허준’의 방영 판권을 사 이라크 TV에서 1년간 틀었다. 드라마의 중간광고 때마다 한화 광고를 했다. 보수적인 중동에서 노출이 심하지 않은 한국 사극은 인기다. ‘허준’은 히트를 쳤고, 마케팅 효과가 발휘됐다. 이라크 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한화건설 김준용 과장은 “이라크에서 한화는 ‘허준’만큼 친근한 기업이 됐다. ‘지속가능한 수주’의 주요한 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한화건설은 이라크에서 21억 달러(약 2조5000억원) 규모의 사회간접시설 공사를 추가로 수주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계약 현장에 한류 코드가 내장돼 있음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관광문화연구원 채지영 연구원은 “한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다. 이제 한류를 글로벌시장에 구축한 ‘산업 인프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김수이 교수는 “한류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국가 브랜드의 프리미엄화’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야 할 길이 멀다. 문화와 산업 기술의 만남은 미래의 주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쇼핑 중심의 관광을 문화로 업그레이 할 방안, 전통 문화유산의 창조적 부활 등은 시급하다. 한류와 한국 문화의 어깨 위에 놓인 시대의 과제를 5회에 걸쳐 짚어본다.

 다롄(중국)=백성호 기자, 김현예 기자 vangogh@joongang.co.kr

◆도움말 주신 분=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박성현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조사연구팀장, 김재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융합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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