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산다 우편 집배원 <이명식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편지요 편지』-.
주소불명인 편지 한통을 들고 우편집배원 이명식씨 (47·서울강동우체국)는 아파트 길목에서 받는이의 이름을 목청껏 불러본다.
을축년 새해를 맞은지 10여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녀의 배낭과 양손에는 뒤늦게 도착한 연하장과 달력이 수북이 쌓여 있다.
이씨가 우편집배원이 된것은 지난 78년.
체신부가 여성집배원을 처음 모집했을 때이니 올해로 경력7년의 최고참 여성집배원이 된다.
『처음 일을 나설때는 여자라고 해서 동네꼬마들이 졸졸따라 다녔지요.
신기하고 재미있었나봐요.
요즘은 제가 배낭을 메고 나타나면 아이들이 먼저 알아보고 우편물도대신 받아가지요』제복을 차려 입은 공무원이 된것이 자랑스럽다는 그는 힘들어도 견딜만하다는 의욕적인 모습이다.
이씨의 하루는 새벽 5시3O분 막내아들의 새벽참 준비로 시작된다.
고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는 아들 (21) 에게 간단한 새벽참을 마련해주고 집을 나서는 시간은 아침7시.
9시부터 저녁5시까지 배낭을 메고 그의 담당구역인 잠실진주아파트· 크로바아파트의배달을 돈다.
하룻동안 그가 배달하는 우편물은 5백여통.
평소보다 우편물이 10배나 증가하는 연말연시(l2월11일∼1월10일)가되면 그도 자전거를 타고 돌아야한다.
『7년간의 집배원생활로 어느짐의 길흉사나 숟가락 숫자까지도 빤히 알수 있어요. 봉투겉면에 쓰여진 글씨만 봐도누구집 사연인지 짐작이가요』
지난 7년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근무해온 그는 20kg이 넘는 배낭의 무게로 한쪽 어깨가 약간 기울어져있다.
하루 70여리을 다닌 탓에 발톱이 빠진 것도 세 번.
우편물선별작업으로 손끌마디마디에는 굳은살이 박혀 있다.
이씨가 두아들(25,21)의생계를 맡고 생활전선에 뛰어든것은 15년전.
결혼10년만에 남편을 사별하고 여직공·파출부·점원등 그의 말대로「닥치는대로」 일한뒤 친척의소개로 잡은 일터가 바로 우편집배원이다.
『애들 공부시키기 위해 일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일이 재미있어 끝까지남고 싶어요. 아파트살림이 늘수록 남자보다는 여자집배원이 담당하는게 주부들에게도 안심이 될겁니다. 컴퓨터시대라고 하지만 우편배달만큼은 사람이 해야할 일이니까 평생직장이 될겁니다』
이씨의 한달봉급은 15만원. 강동우체국의 여성집배원도 7년동안 4명에서 16명으로 많이 늘어 힘이 됐다고.
「연령제한에 묶여 임시집배원으로 근무하는」 그는 오늘은 밤늦도록 관할구역의 우편물을 선별하면서 10년근속상을 꿈꾸고 있다.<육상희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