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이정현, 작은 영화로 만든 기적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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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정현(35)이 작은 영화로 충무로에 조용한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13일 개봉한 이정현 원톱 주연의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안국진 감독)'가 23일 영화진흥위원회 기준 누적관객수 3만 3355명을 동원했다. '암살'·'베테랑' 등 대작들과 비교하면 터무니 없이 낮은 스코어지만, 총 제작비 3억원의 저예산 영화가 이뤄낸 엄청난 성과라 할 수 있다. 스토리와 완성도 면에서도 호평을 얻고 있다. 5포세대(연애·결혼·출산·취업·내 집 마련 등 다섯 가지를 포기한 집단을 일컫는 말)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제작비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근래에 본 각본 중 최고의 각본"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 '꽃잎(1996)' 이후 19년 만에 원톱 주연을 맡은 이정현은 영화의 가치를 진작에 알아봤다. 박찬욱 감독의 추천으로 시나리오를 접했고, 보자마자 노개런티로 출연을 결심했다. 보기 드문 여자 영화라는 점, 영화가 주는 메시지 등에 끌렸다. 이정현은 "시나리오가 워낙 좋아서 나 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재능 기부 형식으로 참여한 영화다. 작품이 좋고, 사람들에게 감동과 확실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영화라 생각했다. 내 필모그라피의 1순위로 올라온 영화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19년 만에 원톱 주연 영화를 했다.
"원톱 영화라서 의미도 있지만 여자 (주인공의) 영화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여자 영화가 요즘 너무 없지 않나. 여자 캐릭터가 부각이 되는 작품이 거의 없고, 거의 잠깐 이용되고 마는 식으로 등장해 개런티를 떠나 의미있는 여자 영화를 찾고 있었다. 그때 마침 이 영화를 만났다. 원톱 주연에서 오는 부담감은 별로 없다. 다만 이 영화가 망하면 더 이상 여자 영화가 안 나올 것 같아서 부담은 된다. 여자 영화들이 더 많이 나오고 다 잘됐으면 좋겠다."

-저예산 영화를 선택했다.
"'명량'처럼 큰 상업 영화를 했으니 이번에 저예산 영화를 해도 금전적인 부분에서도 마이너스는 안 될 것 같았다. 작품만 좋으면 노개런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당장 출연료를 안 받아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깐.(웃음) 작품으로 사람들한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영화는 작품의 크기를 떠나서 시나리오가 좋아서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 스태프들도 재능기부 형식으로 많이 참여했다. 시나리오가 좋은데 더 크게 투자를 받았다면 얼마나 더 좋은 작품이 나왔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그만큼 시나리오가 좋았다."

-스태프들의 아침 식사를 챙겨주는 등 촬영 중 사비도 많이 썼다고.
"자꾸 돈에 포커스가 맞춰지면 안 될 것 같다. 그냥 내 선에서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돈을) 썼다. 모든 스태프들이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좋은 환경에서 촬영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간단하게 식사나 커피 등을 제공했다."

-세탁기 안에서나 다리미로 고문 당하는 장면 등 센 장면이 많다.
"좀 과감하게 그려지는 게 좋았다. 뭔가 보면서 속시원하지 않나. 앵글도 시원시원하게 잡아서 더 시각적인 자극을 준 것 같다. 세탁기 안에 들어간 장면은 실제 세탁기 안에서 촬영한 것이다. 세탁기를 따로 만들기엔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 물을 틀어놓고 그 안에서 찍었다. 무서웠다. 겨울이었는데 뜨거운 물을 틀면 연기가 나서 차가운 물을 틀어야했다. 춥고 힘들게 찍은 장면이었다. 물을 가득채우는 장면은 '명량' 팀에서 CG작업을 해준 것이다. '명량' 때 물 CG를 다양하게 만들어서 세탁기 안에 물이 들어찬 신도 뚝딱 만들어주신 듯 하다."

-'명량' 팀에서 CG를 많이 해줬다던데.
"방화로 건물이 폭발하는 신은 '명량'팀에서 재능기부 형태로 작업해준 것이다. 원래 지금보다 열배 크게 폭발하는 장면을 만들었다. '명량' 때 워낙 큰 규모로 폭발하는 신을 많이 만들다보니 처음엔 매우 크게 폭발 신을 만들었는데 이 영화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최대한 CG를 작게 줄였다."

-센 이미지의 역할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걱정된다. 이미지가 굳힐까봐. 10대~20대 팬들 사이에선 '이 애교'로 통하는데 그게 깨질까봐 걱정된다. (웃음) 하지만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행위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

-동안의 아이콘이다. 비법은.
"젊은 친구들이랑 놀아서 그런가.후배들과 잘 지낸다. 서현과 산다라박이나 정준영 등 후배들과 잘 지낸다. 피부 관리도 열심히 한다. 스물살 때부터 빼놓지 않고, 1~2주에 한 번씩 피부 관리 받는다. 팩도 매일한다."

-이 영화를 박찬욱 감독이 추천했다던데.
"맞다. 영화 '파란만장(10)'을 하며 박찬욱 감독님과 인연을 맺었다. 어느 날 인연이 전혀 없는 감독님한테 전화가 와서 같이 영화를 찍자고 하는데 꿈만 같았다. 단편이지만 감독님의 영화에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아서 전화를 끊고 거실을 뛰어다녔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감독님이 좋은 시나리오가 있다고 한 번 검토해보라며 건넨 책이 바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같이 작업하고 싶은 남자 배우는 누구.
"송강호 오빠와 하고 싶다. 이뤄질 수 없는 로맨스를 찍고 싶다. 돌싱인 남자와 싱글인 여자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면 괜찮을 것 같다. 하하. 유아인 씨도 좋다. 현장에서 워낙 소문이 좋은 배우더라. 의리도 있고 연기도 잘한다는 소문이 있다. 꼭 한 번 같이 해보고 싶다."

-가수 컴백 시기는 언제인가.
"좋은 곡이 나오기 전까지 컴백하면 안될 것 같다. 국내외 행사가 꽉 잡혀있다. MBC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특집 덕분인 것 같다. '무한도전'에 출연한 후 10대 팬들도 많이 생겼고, 공연도 계속 하고 있다. 새로운 음악에 대한 압박이 있다. 내 스스로 만족할 만한 좋은 곡이 나올 때까지 앨범 발매는 미뤄야할 것 같다." 김연지 기자 kim.yeonji@joins.com 사진=박세완 기자

온라인 중앙일보 jst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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