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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몸통 트위스트’ 신바람 난 박병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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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015년 프로야구가 개막한 지난 3월 28일 서울 목동구장. 한화 선발투수 미치 탈보트(32)는 1회 말 2사 1루에서 넥센 4번타자 박병호(29)와 맞섰다. 탈보트는 초구부터 4구까지 연달아 몸쪽 직구를 뿌렸다. 탈보트는 볼카운트 3-1에서 체인지업을 던져 박병호를 유격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이후 타석에서도 집요한 몸쪽 승부는 이어졌다. 이날 박병호의 성적은 5타수 무안타.

 개막전 승부는 박병호와 그를 상대하는 투수들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2012년부터 3년 연속 홈런·타점왕을 차지한 박병호가 2015년엔 얼마나 더 강해질지, 5번타자 강정호(28·피츠버그)가 메이저리그로 떠난 뒤 투수들은 어떤 전략으로 박병호와 싸울지가 관심이었다. 탈보트가 한 것처럼 타자의 기술적 약점과 심리적 공포심을 이용해 몸쪽 승부를 하는 것이 유일한 전략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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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쪽 꽉 찬 공을 잘 치는 타자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드물다. 박병호 뒤에 위협적인 타자가 없다면 (몸맞는 공을 허용하더라도) 몸쪽으로 붙는 공을 던지거나, (볼넷을 주더라도) 유인구를 연속해 던지면 된다. 그러나 박병호는 지지 않았다. 4월까지 25경기에서 홈런 6개에 그쳤지만 5월 이후 꾸준히 홈런을 터뜨리고 있다. 박병호는 24일까지 홈런 44개를 날렸다. 이대로라면 이승엽(39·삼성)이 2003년 때린 한 시즌 최다 홈런(56개) 경신은 물론 60홈런도 노려볼 만하다. 염경엽(47) 넥센 감독은 “시즌 초 박병호가 몸쪽 공 때문에 애를 먹었다. 투수가 몸쪽 공을 던지는 비율이 평균 20%라면 박병호 타석 땐 40~50%에 이른다. 결국 박병호가 이겨냈다”고 말했다.

 올 시즌 박병호는 매우 독특한 타격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두 팔꿈치를 옆구리에 붙인 채 상체를 빠르게 회전해 홈런을 만드는, 이른바 ‘몸통 스윙’이다. 몸쪽 빠른 공이 날아들면 박병호는 두 팔꿈치를 몸통에 붙인 채 회전(스윙)한다. 몸쪽 공을 방망이 중심(스윗 스폿)에 정확히 맞히기 위한 동작. 여기까진 테크닉이 뛰어난 몇몇 타자들도 해 내는 단계다. 박병호는 팔을 펴지 않은 채, 즉 팔과 손목 힘을 많이 쓰지 않고도 홈런을 만든다. 이게 박병호만의 타격이다. 이종열 해설위원은 “팔을 몸에 붙인 채 배트를 돌리면 공을 맞혀도 투구의 힘에 스윙이 밀린다. 그러나 박병호는 몸통 회전력으로 홈런을 친다. 엄청난 힘과 기술이 결합한, 한국 프로야구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스윙”이라고 설명했다. 김인식 야구대표팀 감독도 “박병호가 몸쪽에 대한 약점을 극복했다. 몸쪽 공을 던지라고 기다리는 듯한 느낌도 든다”고 했다.

 여기에 하이 피니쉬(high finish)가 더해진다. 오른손 타자의 경우 몸통 회전력이 커지면 배트 헤드도 같은 축으로 회전해 오른쪽 파울 또는 3루 땅볼이 나오기 쉽다. 그러나 박병호는 몸쪽 공을 때린 뒤 배트를 앞으로 길게 뻗어 올리는 인앤드아웃(in and out) 스윙을 한다. 현재윤 해설위원은 “박병호는 몸쪽 공을 어퍼컷(uppercut)으로 올려친 뒤 앞으로 폴로 스루를 한다. 타구를 좌중간을 향해 높게 띄우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볼 수 있었던 동작인데 올해 피니시가 더 좋아졌다”고 분석했다.

 현재 박병호가 자신의 최고 타율(0.347·타격 4위)을 기록하고 있는 건 몸쪽 공에 잘 대처한 덕분이다. 여유있게 투구를 보면서 떨어지는 변화구 같은 유인구를 골라내는 것이다. 현 위원은 “150㎞ 이상의 빠른 공과 스트라이크존 아래로 날카롭게 떨어지는 포크볼이라면 박병호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이 아닌 진짜 야구에선 투수가 마음 먹은 대로 완벽히 던질 수 없다. 그래서 박병호가 무섭다”고 말했다.

 올 시즌이 끝나면 박병호는 메이저리그에 도전한다. 아시아 최고 수준의 스윙 파워와 스피드, 그리고 스트라이드를 하지 않는 타격 자세가 그의 빅리그 진출 전망을 밝히는 요소들이다. 무엇보다 3년 연속 홈런왕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도전하는 의지가 박병호의 가치를 더 높이고 있다. ‘몸통 스윙’이 그 결정판이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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