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짚을 건 짚고 남북경협 계속 이어가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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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호 7 면

랭글 의원은 “대화가 통하지 않고 비합리적인 북한의 지도자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한국전 참전용사인 찰스 랭글(85·민주당) 미국 연방 하원의원은 “북한의 지뢰 매설과 포탄 공격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순 없다. 짚고 넘어갈 것은 반드시 짚어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한파 정치인인 랭글 의원은 그러나 “경제지원 등 남북 협력은 그것대로 추진해야 한다. 북한 지원의 목표는 북한 주민들에게 더 나은 생활 방식이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방한한 그를 2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만났다.

-북한의 도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나는 젊었을 때 특히 군 복무 시절부터 아쉬운 게 없는 사람과는 절대 싸워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북한의 지도자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 상상 이상으로 비합리적인 사람이다. 공격하고 도발해놓고도 하지 않았다고 부인한다. 나는 최근 일련의 도발 행위에 대한 반격의 수위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짚고 넘어갈 것은 반드시 짚어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거나 참기만 할 수는 없다. 북한은 한국에만 위협이 아니라 동아시아와 전 세계에 큰 위협이다.”

-미국 조야에선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나는 미국의 공식 입장을 말할 순 없다. 다만 배경지식과 정보가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북한의 무책임한 지도자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이다. 이 고민은 심지어 북한에 우호적인 나라들도 공유하는 부분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미친 사람과 싸웠다간 우리만 손해다. 주먹을 쳐들고 때려눕혀도 이겼다고 좋아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한국에선 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와 통일 시대에 대비하자는 여론이 많다. 하지만 도발이 이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전쟁 당시 내가 여기 있을 땐 북한이 우리를 향해 1000발, 1만 발의 포탄을 쐈다. 이번엔 몇 발을 쐈나. 지뢰 폭발로 장병이 참혹한 피해를 봤지만 포탄으로 인한 피해는 없었다. 별일이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다. 북한과 경제협력을 하는 건 돈을 많이 벌자는 게 아니다. 목표는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 방식이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확성기를 통해 대북 방송을 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 아닌가. 경제협력 및 각종 연계활동은 그것대로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북한 주민들이 ‘한국은 북한 정권은 싫어해도 북한 주민들은 위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대북 지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대화하고 연계하지 않으면 핵문제는 어떻게 풀 건가. 중국이 북한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으니 중국이 문제를 좀 더 주도적으로 잡아야 한다면 그런 의견도 북한에 전달돼야 할 것 아닌가. 북한과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사람들은 (미 대선 후보로 나선) 도널드 트럼프와 같다. 상황이 어떻게 되든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할 것이다. 나는 오바마 대통령이 물 위를 걷자 공화당 사람들이 ‘저 봐라. 수영을 못하지 않느냐’고 했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대안 없이 반대만 해선 안 된다.”

-과거 민주당(클린턴) 행정부에서 북한 공습 시나리오를 구상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그런 게 있나.
“대북 정책과 관련해 어느 누구도 경제제재 또는 다른 종류의 압박이 소진됐다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군사행동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 이란에 했던 것처럼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프로세스를 가동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현 6자회담의 북한을 제외한 5자가 모여 더 적극적인 대북 억지력, 지원책을 논의하는 것도 방법이다. 군사행동을 하려면 모든 옵션을 소진했거나 전쟁을 겪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한국이 중국과 너무 가까워지고 있나.
“미국과 중국이 더 가까워지고 있다(웃음). 중국은 세계 무대의 메이저 플레이어로 떠올랐고 가까워지고 있는 나라도 많아졌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국이다. 가까운 것은 당연하다. 미국도 중국과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 아베 총리의 담화를 어떻게 봤나.
“매우 실망스러웠다. 지난 4월 아베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기 몇 주 전에 그와 만났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사과(apology)’에 대한 얘기를 더 이상 하기 싫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보다는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게 동아시아 지역에서 더 중요한 것은 맞다. 다만 과거사에 대해 매듭을 지을 기회가 생긴 만큼 사과를 확실히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다 잘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국민과 대통령이 ‘이 정도면 됐다’고 받아들이고 미래로 나아가면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쉽다.”

-현재 한·미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나.
“미 의회에서 한국처럼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 많은 지지와 성원을 얻고 있는 나라가 또 없다. 물론 무역의 문제가 있긴 하다. 설령 그런 문제가 있더라도 우리는 같은 선상에서 이런 문제들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보다도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약간의 수정이 필요할 뿐이다. 내가 발의한 ‘한반도 평화통일 공동 결의안’ 등은 상·하원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한·미 간 무역의 어떤 부분이 특히 불만족스러운가.
“한국 내 미국 자동차 수는 미국 내 한국 자동차 수에 비해 말도 안 되게 적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미국산 자동차가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다. 어떤 문제가 있든지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해결될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과거에도 경험한 적이 있고 다시 문제를 겪을 필요가 없는데 아직도 겪고 있다.”


찰스 랭글 1930년 뉴욕 할렘 출생. 한국전 참전으로 동성무공훈장(Bronze Star)과 상이기장(Purple Heart)을 받은 참전용사다. 뉴욕대, 세인트존스대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 71년 하원의원에 당선한 이후 지금까지 내리 23선에 성공했다. 하원 내 ‘블랙 코커스’ 창립 멤버, 세입세출위원장, ‘코리아 코커스’ 공동 의장을 역임했다. 최근 휴전 상태인 한반도에서 전쟁을 공식 종료하자는 ‘한국전쟁 종전 결의안’을 발의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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