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 품은 의문?“어떤 신을 믿어야 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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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호 30면


“당신 ‘피케이’야?” 인도 라자스탄 사막에 불시착한 외계인(아미르 칸)은 저도 모르게 “어떻게 알았느냐”고 되묻는다. 탐사 나온 지구 땅을 밟자마자 목에 걸고 있던 우주선 리모컨을 도둑 맞고 돌아갈 길이 사라진 그를 두고 보는 사람마다 “피케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자연친화적인 종족이라 옷이라곤 걸쳐본 적이 없고 손을 잡으면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덕분에 언어를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사람. 하는 짓마다 기행의 연속이니 “술 취했느냐”고 묻는 것도 과언은 아닐 터다(피케이는 힌디어로 “술 취했느냐” 혹은 주정뱅이라는 뜻이다).


별에서 온 피케이는 곧장 리모컨 되찾기에 착수한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리모컨의 행방을 물어보지만 사람들은 한결같이 “신한테 물어보라”고 답한다. 그 길로 가게로 달려가 ‘신’을 구입하지만 20루피(약 400원) 짜리 성상은 답은커녕 묵묵부답이다. 답답한 맘에 힌두교 사원과 기독교 교회는 물론 온갖 종교를 쫓아다녀 보지만 신마다 다른 회사를 운영한다는 사실만 알게 됐을 뿐 자신의 신이 누구인지 찾지 못한다.


그 때 피케이 앞에 자구(아누쉬카 샤르마)가 나타난다. 열혈 리포터인 그녀는 ‘얘기가 될까’ 싶어 그에게 흥미를 느꼈지만 점점 그가 지닌 엉뚱한 매력에 빠져든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세상을 보는 다른 시각에 저도 모르게 끌려들어가게 된 것. 신에게 전해지지 않는 메시지를 두고 우리가 잘못된 번호를 갖고 있는 것 같다거나 우린 모두 신의 자식들인데 어려운 길만 주실 리 없다는 믿음이라니. 신선하지 않은가.


피케이가 사제와 벌이는 설전이 방송을 타자 사람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인다. 힌두교 사제의 열혈 신도인 아버지 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자구 뿐만 아니라 각종 신의 횡포에 데인 사람들의 제보가 빗발쳤던 것. “소가 헤드헌터도 아닌데 어떻게 소에게 빈다고 직업이 생기겠느냐” 부터 시작해 쌓여있던 불만들이 폭풍처럼 이어진다.


그러자 신의 말이라면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함부로 신을 입에 올리는 일 역시 금기시됐던 인도 사회 전체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누구나 속으로 한번쯤 품었던 의문을 꺼내놓는다. 누가 나를 만든 신이고, 누가 인간이 만든 신인가. 어떤 신을 믿어야 하는가. 신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 종교는 옷을 바꿔입고 스타일을 달리 하면 알아채지 못하는 패션에 불과한 것인가-.


묵직한 질문들이 연타로 쏟아지지만 어느 누구도 쉽게 답하진 못한다. 그 심오한 질문들은 평생을 고민해도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깨달음의 실마리 정도는 하나씩 맘에 품을 수 있게 된다는 게 이 영화의 미덕이다.


발리우드 특유의 뮤지컬 퍼포먼스를 기대하는 인도 영화 팬들에게는 다소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세 얼간이’의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과 주역 아미르 칸의 재회지만 진지한 주제인 만큼 노래하고 춤추는 시간은 대폭 줄였다. 초반에 인도에 떨어진 외계인과 벨기에 유학 시절 자구의 사랑 이야기가 도대체 어떻게 연결될까 의구심도 들지만 요리조리 방향을 틀며 재조합되는 스토리는 이내 감탄사를 부른다.


배경 음악으로 변한 주제곡들은 인물의 행적을 세심하게 뒷받침한다. ‘세 얼간이’의 삽입곡 ‘알 이즈 웰(All is Well)’ 만큼의 중독성은 없지만 달빛 아래서 ‘사랑은 시간낭비(Love is a Waste of Time)’에 맞춰 추는 ‘배터리 충전 댄스’는 충분히 따라해 볼 만하다. 단 한 곡이라도 놓칠 수 없다면 국내 개봉판(129분)보다 일부 상영관에 마련된 풀 버전(153분)을 권한다. 지난해 인도 개봉 이후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 전 세계 1200억원의 흥행 수익을 달성하고 있다. 9월 3일 개봉.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와우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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