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고 짧은 … 그러나 소중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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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호 34면


나는 엄지발가락을 바라본다. 첫 문장을 쓰는 일은 어렵다. 그것은 작가 윤이형이 쓴 아름다운 에세이 ‘오지심장파열술을 다시 떠올리며’에 나오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엄지발가락을 움직이는 일이다. 영화 ‘킬빌’에서 전신마비로 병실에 누워 있는 브라이드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간호사 차림으로 복도를 걸어오는 애꾸눈 엘 드라이버, 코드명 ‘캘리포니아 마운틴 스네이크’로부터 달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신을 집중하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마비된 엄지발가락의 감각을 깨우는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엄지발가락을 바라본다.


엄지발가락. 눈에서 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몸의 일부, 몸의 말초. 다른 발가락에 비해 가장 굵고 가장 짧은 발가락. 발톱이 앞으로 약간 구부러진 내 엄지발가락은 볼수록 생김새가 이상하다. 어떤 것이든 자세히 보면 낯설다. 살면서 나는 내 엄지발가락에 그다지 주목한 적이 없었다. 발톱을 깎을 때도 그저 습관적으로 볼 뿐 주의를 기울여 자세히 살펴본 적이 없다.


나는 내 몸을 의식하지 않는다. 내 눈동자와 콧구멍과 혀를 의식하지 않는다. 식도와 위와 허파와 기관지와 간과 쓸개와 심장을 의식하지 않는다. 내 손목과 팔꿈치와 허벅지와 무릎을 나는 잊고 산다. 나는 내 몸에 발가락이, 엄지발가락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곳이 아프기 전에는.


아프면, 그때 그 아픈 부위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몸에 그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이 나의 일부라는 것을 비로소 자각한다. 만일 통풍 때문에 오른발 엄지발가락이 아프다고 하자. 나는 내 오른발에 엄지발가락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아프기 전에는 그의 존재를 모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니라 아프니까 오른발 엄지발가락이다. 그리고 내 몸은, 내 마음은 온통 아픈 오른발 엄지발가락이 된다. 나는 오로지 아픈 오른발 엄지발가락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나는 천식을 앓기 전에는 기관지가 내 몸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한 번도 자각한 적이 없다. 천식 발작을 하고, 기관지가 염증으로 부풀어올라 숨구멍이 좁아져 호흡이 힘들어질 때, 그때 나는 기관지의 세포 하나하나를 실감한다. 그러나 발작이 지나가고 다시 숨이 고요해지고 몸이 평화를 찾으면 나는 가장 먼저 기관지의 존재를 잊어버린다. 고통은 현재적이다. 과거의 고통은 없다. 고통은 기억되지 않는다.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 같은 고통은 그저 흉터이지 실재하는 고통이 아니다. 오직 현재 이 순간 고통 속에 있을 때 그것을 알 수 있다.


몸의 고통, 통증은 절대적이다. 비교할 수도 비유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설명할 수 있다 해도 전달할 수 없다. 나의 고통은 오로지 나의 아픔일 뿐이다. 너는 내 아픔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소통할 수 없다. 불통이다. ‘집단적 고통’이란 형용모순이다. 고통은 고유하고 개인적이다. 순수하게 개인적이다.


가령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는 아내가 아파서 끙끙거릴 때에도 나는 아내의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아내의 고통은 내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저 나는 아내가 밤에도 잠들지 못하고 일어나 고통스럽게 자신의 다리를 주먹으로 두드리는 동작을 볼 뿐이다. 통증으로 자신도 모르게 찡그려지는 아내의 얼굴을, 아내의 신음소리를, 아내의 한숨을 보고 들을 뿐이다. 내가 보고 듣는 것의 총체가 아내의 고통일까? 그것은 실제 아내가 감당하고 겪는 고통, 그 엄지발가락에도 가 닿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내 옆에서 마치 아내의 고통을 이해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픈 아내 옆에서 아픈 표정을 짓고 있으니 내 오른발 엄지발가락이 살살 아파온다. 아무리 작은 아픔이라도 나는 내 아픔에 민감하다. 아픔을 수치화할 수 있을까? 나의 고통과 너의 통증을 비교할 수 있을까? 고통에는 오직 나의 고통만이 현재한다. 나는 아내의 류머티즘보다 살짝 부은 내 오른발 엄지발가락이 더 견딜 수 없다. 오직 내 아픔만이 가장 생생하고 절대적이다. 통증은 질투심이 많아서 몸과 마음을 금세 독점한다.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수 없게 만든다.


이제 나는 내 아픔에 집중한다. 관절 부위가 빨갛게 살짝 부은, 아무래도 통풍이 도진 것 같은 엄지발가락을 나는 바라본다. 겨우 첫 문장을 썼다. ●


김상득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에 근무하며, 일상의 소소한 웃음과 느낌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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