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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갈 성장엔진’은 사람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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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준현
김준현 기자 중앙일보 팀장 겸 경제에디터
김준현
경제부문 기자

영화 ‘암살’을 보며 오래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투사들의 활약과 고난, 희생을. 학창시절엔 그들의 얘기에 참 많이 억울해하고 분노했었는데.

 중앙일보가 17일부터 연재하고 있는 ‘100년 갈 성장엔진을 키우자’란 기사를 기획하면서 한동안 잊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이병철·정주영·구인회의 무용담을. 다시 봐도 흥미롭고 어떤 대목에선 가슴 벅차다. 일흔셋 나이에 투자자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이병철 삼성 회장의 도전, 조선소도 없으면서 유조선을 두 척이나 판 정주영 현대 회장의 배짱, 최초의 국산 라디오와 TV를 내놓은 전자산업의 선구자 구인회 LG 회장.

 스티브 잡스(애플 창업자), 일론 머스크(테슬라모터스 창업자)의 성공 스토리에 열광하지만 극적 요소라면 이쪽이 한 수 위다. 식민지와 전쟁을 거친 황무지에서 맨주먹으로 세계 일류 기업을 일군 대하드라마에 감히 대적할 수 있겠나. 기적·신화라 이름 붙여도 좋다.

 그러나 이건 모두 꿈이다. 흘러간 옛 노래다. 꿈에서 깬 현실은 21세기 ‘위기의 대한민국’이다. 모두가 위기를 이야기한다. 대통령조차 “경제 전반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며 긴장시킨다. 청년 실업의 심각성을, 조기 퇴직의 고충을, 자영업자 도산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더 있다. 제조업의 쇠락, 수출의 위기, 중국의 위협…. 대한민국은 절망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투사들은 위기와 혼돈 속에서 사그라들지 않는 희망을 찾았다. 이병철·정주영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척박한 땅을 딛고 일어섰다. 혹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겁을 먹고 있는 건 아닌가. 우리의 실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는 건 아닌가.

 ‘100년 갈 성장엔진을 만들자’는 기획기사는 ‘대한민국 원기 회복 프로젝트’다. IT를 결합한 스마트화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하며, 연구개발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여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자는 제안이다. 그래서 자신감을 갖자는 ‘대한민국 감동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광복 후 70년의 경제 기적을 만들었듯 대한민국 100년 신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창업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시작하는 데 이만한 것이 없다. 이병철·정주영 회장의 도전을 다시 곱씹어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을 본다. 잘 교육받고, 할 수 있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사람들. 삼성·현대의 신화는 그런 사람들이 만들었다. ‘100년 갈 성장엔진’은 반도체·자동차에 앞서 사람이다. 잘 교육받은 인재, 꿈꾸는 몽상가가 우리의 엔진이다. 70년 동안 그랬듯이 앞으로도 우리의 최대 자원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41만 청년실업자(20~29세)가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을 길러낼 교육마저 길을 잃은 지 오래다. 이러다 사람이란 성장엔진이 꺼져 버릴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100년 대계를 위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김준현 경제부문 기자